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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상징의 화원에서 노는 한 마리 나비"문학의 향기 - 김환태문학관
  • 수정 2019.04.23 17:45
  • 게재 2019.04.16 16:25
  • 호수 418
  • 11면
  • 정순형 선임기자(junsh@gimhaenews.co.kr)
▲ 전북 무주 반디골전통공예문화촌에 자리잡은 김환태문학관 전경.

 

     ▲ 김환태(1909∼1944)


문단에 순수문학 씨앗 뿌린 이론가
정치이념 도구 및 조직 활동 거부

조선어 말살 정책에 절필 선언
'박용철 누이와 결혼사진' 눈길 




우리 문단에 순수문학의 씨앗을 뿌린 이론가. 문학이 이념투쟁이나 조직 활동의 도구가 되는 것을 거부했던 문학평론가 김환태가 살다간 발자취를 보여주는 공간은 전북 무주군 반딧골전통공예문화촌에 자리 잡고 있었다. 유리 외벽이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내는 현대식 건물 3층에 마련된 문학관 전시실로 들어가면 순수문학 이론가 김환태가 남긴 어록이 걸려 있다.
 
"문예비평은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확대하기 위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하는 과정이다. 비평가는 정치적이고 실용적인 관심을 버리고 작품 그 자체를 바라보아야 한다."
 
계급투쟁을 지향하는 좌파 문인들이 문단을 지배하던 시대에, 모든 이념과 사상을 거부하면서 오로지 예술적 관점에서 문학을 바라보았던 예술지상주의적 시각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아름다운 꿈을 쉬운 말로 얽어 놓으려는 욕망. 그 아름다운 욕망에 흠뻑 취하면 충분하다. 나는 상징의 화원에 노는 한 마리 나비이고자 한다."
 

▲ 김환태의 문학세계를 알려주는 영상물.
▲ 역대 김환태문학상 수상자를 소개하는 전시공간.

나라를 잃은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일본에 빼앗긴 주권을 되찾는 것을 가장 큰 과제였던 시절에 정치 이념을 배제한 순수 문학을 주장했던 문예 비평가 김환태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그에 대한 해답은 전시실 벽면에 걸린 연보가 들려준다.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기 한 해 전인 1909년, 전북 무주에서 태어나 한학을 공부했던 김환태는 열세 살 때 입학한 보성고보에서 대표작 "남으로 창을 내겠소…"로 유명한 시인 김상용을 교사로 만난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간 김환태는 도시샤대학 예과를 거쳐서 규슈 제국대학 영문학과를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서구식 문예이론에 빠져들게 된 사연이 이어진다. 이후 스물일곱 살 되던 해에 좌파 문인들이 중심이 된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가 해체된 공백기에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이효석, 정지용, 김기림 등과 순수문학을 향하는 '구인회'를 조직 본격적으로 비평 활동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 문예비평 방법론을 제시하는 김환태 어록.

"문학은 언제나 감정에 호소한다. 예술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문학이 이념을 얻고 예술을 잃는 잘못을 범해선 안 된다."  
 
지금 들으면 너무나 당연하게 들리는 주장이지만, 당시 주권을 잃은 나라의 지식인 사이에서 최고의 화두로 등장했던 '민족'은 과연 젊은 문인 김환태의 가슴에는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그에 대한 김환태의 답변은 명쾌했다.
 
"우리말로 쓴 문학 작품이야말로 우리 민족에게 바치는 최고의 선물이다."
 
일제가 민족 말살 정책을 추진하던 시대에 '우리말과 우리글로 시와 소설을 쓴다는 그 자체가 민족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는 논리가 아닐까. 
 
전시실 끄트머리에는 김환태가 남긴 결혼사진이 걸려 있다. 그날 현대식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 박봉자 여사는 대표작 '떠나가는 배'로 유명한 시인 박용철의 누이동생이라고 했다. 훗날 대중가수 김수철이 부른 노래 '나 두 야 간다'의 가사를 쓴 시인 박용철의 누이동생이 김환태의 부인이었다니…. 넓고도 좁은 것이 세상인가 보다.
 
결혼사진에 등장하는 하객 중에 '봄 봄'으로 유명한 소설가 김유정의 얼굴도 보인다. 그날의 주인공 박봉자 여사가 처녀였던 시절, 소설가 김유정이 무려 30여통에 달하는 연애 편지를 보내고도 답장을 받지 못했다는 뒷이야기가 재미있다.
 

▲ 시인 정지용과 독립운동가 안창호와의 친분을 알려주는 게시물.

이후 김환태의 작품 활동은 평탄하지 못했다. 1941년, 일본의 조선어 말살 정책에 반발한 김환태가 절필을 선언한 것을 끝으로 다시는 펜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8·15광복을 맞이하기 한해 1944년, 서른다섯 살의 젊은 나이에 김환태가 세상을 떠난 사연에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민족사의 가장 어두운 시절에 정치 이념을 배제한 순수문학을 주장할 만큼 문학적 소신이 뚜렷했던 김환태가 살다간 발자취를 살펴보고 돌아오는 길. 문학관 출구에 마련된 '김환태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 코너'에 적힌 안내문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김환태문학관을 둘러보고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셨나요. 1909~1944년. 과거 속에 살다간 김환태님께 편지를 써 보아요."
 
김해뉴스 무주=정순형 선임기자 junsh@gimhaenews.co.kr


*찾아가는 길
△ 전북 무주군 무주읍 최북로 15.
△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통영·대전고속 도로로 갈아 탄 후 무주로로 옮겨 타면 된다.
    약 2시간 30분 소요.

*관람 안내
① 오전 9시~오후 6시
② 매주 월요일(공휴일이면 그다음 날)과 1월 1일, 설날, 추석 당일은 휴관. 063-320-5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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