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여성복지회관 '성원학교' 학생들

평균 연령 78세 한글성인문해반 수업
매주 화·목 이틀 책 읽고 글쓰기 열기
20여년 넘게 노인들에게 새세상 선사


지난 1일 오전 11시 봉황동 김해여성복지회관 2층에서 권영상 시인의 '기차역이 있는 바다 그림'이라는 시 낭송소리가 울렸다. 매주 두 번, 화·목요일에 열리는 한글성인문해반 수업을 듣는 '나이든 학생'들의 목소리였다. 바로 평균연령 78세인 '성원학교' 학생들이었다.
 
성원학교는 김해여성복지회관 부설기관으로, 성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곳이다. 1990년 '한글학교'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지만 2004년 성원학교로 이름을 바꿨다. 성원학교에는 책상 40개 정도가 놓여 있다. 교실 한쪽 구석의 책꽂이에는 할머니들이 쓴 일기를 모은 '성원학교 문집'이 꽂혀 있다. 할머니들은 책상에 머리가 닿을 만큼 고개를 숙인 채 한글 공부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었다.
 

▲ 성원학교의 한 할머니 학생이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한글을 배우고 있다.
이날 성원학교 박명수(77) 교장은 '2013 김해 평생학습·과학축제'를 앞두고 권영상 시인의 동시 '종달새'와 '기차역이 있는 바다 그림'을 가르쳤다. 출석한 할머니 15명은 한 차례 동시 낭송이 끝나자 저마다 원고지와 공책에 동시를 따라 적었다. 할머니들이 잘 깎은 연필로 힘주어 한 자씩 써내려가는 사이 자원봉사자 2명이 교실을 돌아다니며 부족한 부분을 지도해주었다.
 
글씨 연습이 끝나자, 할머니들이 교실 칠판 앞으로 한 명씩 나갔다. 연습했던 동시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단어나 구절을 칠판에 적었다. 몇몇 할머니들은 동시를 적다가 다시 자리로 돌아가 글자를 훔쳐보기도(?) 했다. 칠판이 글씨로 꽉 차자, 박 교장의 선창에 따라 할머니들은 칠판에 적힌 단어들을 다함께 읽었다. 교실 안은 다시 할머니들의 밝은 목소리로 가득 찼다.
 
할머니들의 책상 위에는 공책, 연필뿐만 아니라 바나나와 사탕도 놓여 있었다. 학교에서 간식으로 준비한 것이냐고 물었더니, 할머니 한 분은 "할매들이 학교에서 나눠 먹으려고 가져 왔지. 자주 간식 가져온다"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다시 머리를 공책에 붙인 채 글자 하나라도 놓칠 새라 수업에 열중했다.
 
"일제 때 일본어 배우다 학교 그만뒀지
 이젠 병원 영수증도 이해돼 많이 편해"
 입학은 있어도 졸업 따로 없어 평생교육


동시를 읽고 쓰는 사이 수업이 끝날 시간이 됐다. 할머니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 위로 동그라미를 그리고 몸을 좌우로 흔들며 "안녕히 계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그것도 끝이 아닌지 할머니들은 두 명씩 짝을 지어 마주보고 손뼉을 마주치더니 포옹을 했다. 박 교장은 "이게 성원학교의 인사법이다. 단순히 글만 배우러 오는 것이 아니라 할머니들이 같이 정을 나누러 오시는 것이기 때문에 수업 때마다 서로 안으면서 인사를 하신다"고 설명했다.
 
수업이 끝나 교실을 나가던 한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7년째 성원학교에 다닌다는 송귀연(79·여) 씨였다. 그는 "8세 때 (일제)식민지 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우다가 너무 어려워서 학교에 안 갔어. 나중에 결혼해서 애 낳고 배우면 된다고 생각했지. 근데 결혼하니까 애 키워야 하고, 농사도 지어야 하고 제대로 글을 배울 수가 없는 거야. 그게 한이 돼서 성원학교에 온다. 이젠 글을 좀 배운 덕에 병원에 가면 영수증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송 할머니는 "사실 글도 글이지만 이렇게 나와서 이야기하는 게 좋다"며 환하게 웃었다.
 
성원학교 수업은 매년 1, 2학기로 구분해 이뤄진다. 8월은 여름방학이고 1월은 겨울방학이다. 수업시간은 오전 10시부터 낮 12시까지다. 수업은 한글성인문해반 하나가 전부다. 학교에 오래 다녀 한글을 많이 아는 할머니들은 교실 뒤쪽에서 따로 수업을 받는다.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조금 더 어려운 단어들을 배우는 것이다. 교재는 김해시에서 초·중·고급 총 12권으로 만든 평생교육용 교과서다. 할머니들은 지금 10권째를 배우고 있다. 성원학교는 한글을 배우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 학기가 시작한 뒤라도 입학할 수 있다. 졸업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처음 성원학교가 시작된 2004년부터 지금까지 학교를 다니는 할머니들도 있을 정도다.
 
윤영애 교감은 "할머니들은 한글을 모르면 밖에 잠깐 나가는 것도 두려워한다. 성원학교는 그런 할머니들이 집에서 나와 일상생활을 잘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다. 버스에서 좌석을 찾으려 해도 창측, 내측이라는 글자를 알아야 앉을 수 있다. 글을 배운 할머니들은 말 그대로 '눈이 밝아졌다'며 고마워한다"고 학교 운영의 보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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