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집안의 딸, 100년 전통의 히타치 그룹 근무.' 모리와키 치아키(47) 씨는 일본에서 '엄친딸' 일등 신붓감이었다. 그런 그가 지난 1997년 한국에 시집가겠다고 했을 때 모두가 만류했다. 하지만 그는 벌써 네 아이의 엄마가 됐다. 한국 생활 15년 만에 이제 '아줌마'가 다 됐다고 너스레를 떠는 그의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치아키 씨의 고향은 시마네현이다. 일본 정부가 이 지역에 독도가 포함돼 있다고 주장해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그는 이곳에서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집안의 막내딸로 자랐다. "학교 다닐 때는 한국에 대해 거의 몰랐어요. 수업 시간에 특별히 배우지도 않고…." 그런 그가 한국에 시집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하지만 종교를 통해 한국을 알게 됐다. 그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역사에 대해 교회에서 처음 알게 됐다"며 "갈등을 넘어 조화를 이루어야 된다는 말이 깊이 기억에 남았다"고 말했다. 그는 통일교 교인이다.
 
부모님의 반대는 극심했다. 그의 결혼식 때 부모님이 참석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의 언니들도 말렸다. 편하게 시집가서 살면 될 걸 왜 타지에 가서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말이다. "막상 한국에 오니 정말 현실은 녹록치 않더라고요."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처음 한국에 온 그는 '이방인'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충격을 받은 것이 한의학이 발달한 점이라고 했다. 당시만 해도 일본에서는 침 놓고, 뜸 뜨는 일이 흔하지 않았다. 치아키 씨는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의료기술로 해도 낫지 않으면 찾는 곳쯤으로 생각했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시부모님은 큰 힘이 됐다. 일본어를 할 줄 알았던 시아버지는 그에게 한국에 대해 일러줬다. "시부모님이 제가 퇴근해 올 때까지 기다려 차근차근 알려주시기도 하고. 정말 행복했죠." 그는 멋쩍게 웃었다.

그는 친정을 방문했을 때의 일화도 들려줬다. "친정엄마를 보자마자 왜 이리 살이 빠졌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친정언니가 조용히 부르더라고요. 엄마 상처받게 그런 얘기를 왜 이리 직접적으로 하냐고." 그 때 느꼈다고 했다. 일본인들은 보통 하고 싶은 말을 돌려 말하는데 어느 순간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때, "아, 나도 한국사람 다 됐구나" 하고 말이다.

치아키 씨는 현재 일본어 강사로 활발하게 일하고 있다. 그는 대학시절 아동문학을 전공했다. 원래 꿈도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가르치는 학생들 대부분은 성인들이다. "그래도 절반쯤 꿈을 이룬거죠." 그는 쑥스러운 듯 웃었다.

그에게는 큰 바람이 있다. "앞으로도 한국하고 일본의 사이가 더 좋아졌으면 좋겠어요. 일본이 한국의 잘못된 역사에 대해서도 깨우쳐 더 가까운 사이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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