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의 덜미

송 미 선

유통기간이 하루 남은 우산을 샀습니다

우산대를 빙글빙글 돌리며 걷습니다
웃음소리가 우산에 앉기도 전에
눈물방울이 튕겨 나가네요
비바람이 몰아치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세 개를 한 묶음으로 팔고 있었기에
덥석 쥐었습니다

계절을 버무려
마음 가는대로 하나씩 꺼내 쓰고 버리려구요
생각을 낭비해버린 것을 알아챘을 때
한 계절이 끝나고 있습니다
다음 계절의 계획표를 만들기 전
붉어지던 빗방울이 그치네요

접혀지지 않는 우산살이 우두두둑
부서지는 기미가 느껴지네요
뼈대가 생각보다 단단한가 봅니다

이제 비가 그치네요 그러나
실마리가 주렁주렁 달린 우산을 접을 수 없네요
기척 없이 돌아서는 계절을
씹지도 않고 그냥 삼키며

물구나무 서있는 나를 빙글빙글
돌립니다


<작가 노트>

“사물 속엔 무수한 이야기 숨어 있다”

'우산(雨傘)은 비, 눈, 우박이 내리고 있을 때에 스스로의 몸이나 소지품을 적시지 않기 위해 쓰이는 물건이다. 우비(雨備)의 하나. 펴고 접을 수가 있어 비가 올 때에 펴서 손에 들고 머리 위를 가린다'. 우산의 사전상 정의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나의 사물인 우산을 비를 피하는 도구를 넘어서서, 세상살이의 고달픔을 지켜주는 바람막이로 보았다. 가족 중에서 우산에 가장 가까운 사람은 단연코 아버지다, 그리고 어머니다. 푹풍우를 막아줄 뿐만 아니라, 쓰러져 일어날 힘이 없을 때도 묵묵히 기다려준다.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주절거리는 혼잣말, 일기장, 혼자서 마시는 한 잔의 술 등등 모두 우산일 것이다.

'우산살이 우두두둑/ 부서지는 기미가 느껴지네요/ 뼈대가 생각보다 단단한가 봅니다'에서 보듯이 우산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비바람에 맞서다보면 우산살이 부서질 때도 있다. 그러나 우산대만은 꿋꿋하게 제자리를 지킨다. 과연 우리는 누구에게 우산이 되어주고 있는지 뒤돌아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삶은 한 가지 방식으로 해독되지 않는다. 보는 방향에 따라 조금씩 달리 보인다. 미소 띤 얼굴도 몇 발짝 떨어져 보면 웃는 모습 뒤에 소리없는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시인은 섬광처럼 지나가는 감정을 놓치지 않는다. 사유의 끝자리까지 가다보면 한 편의 시를 만날 수 있다. 하나의 사물 속에는 무수한 이야기들이 내포되어 있다. 보편타당하게 통용되고 있는 일상어를 벗어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을 따라가듯 가보면 또 다른 우산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김해뉴스
 

송미선 시인

 ·경남 김해 출생
 ·동아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11년 시와사상 등단
 ·2015년 시집 <다정하지 않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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