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순형 선임기자

우리나라 프로 야구 선수 중 시즌 타율 4할대를 기록한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정답은 백인천. 이십 대 초반에 일본으로 건너가 20여 년간 활동하다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에 MBC청룡(현 LG트윈스) 초대 감독 겸 선수로 뛰면서 시즌 타율 4할 1푼 2리를 기록한 백인천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런 백인천이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할 당시 병역 기피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일이 있었다. 고교졸업 후 현역 입영 통지서가 나오면 즉시 돌아와서 병역의무를 마친다는 조건으로 일본행 비행기를 탔던 백인천이 약속을 지키지 않자, 병역기피 의혹을 제기하는 여론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당국은 서류상 현역 군인인 백인천이 중앙정보부(현 국정원)에 근무하는 첩보원 자격으로 일본 프로야구팀에 잠입해서 정보수집 활동을 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형식으로 논란을 잠재웠다.  

요즘 같으면 형평성을 주장하는 네티즌들의 손끝에서 백인천이라는 이름 석 자가 인터넷 공간을 도배질하고도 남았을 일이었다. 

이처럼 전 국민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병역 의무에 관한 논란이 최근 우리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지난주 대법원이 종교적인 신념을 앞세워 입대를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 모(34)씨에게 무죄판결을 내린 데 따른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종교적 신념과 양심에 따라 군 복무를 거부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라는 판결에 대한 작용과 반작용이라고나 할까.  

가장 먼저 행동에 옮긴 일부 진보단체들은 대법원 정문 앞에서 집회를 열고 "법원도 인정했다. 병역 거부자를 석방하라"는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에 반해 일부 보수적인 네티즌들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이번 대법원판결로 군대를 다녀온 사람만 바보가 됐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다른 한편에선 "종교적 자유를 병역 기피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늘어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병무 행정 당국자들 사이에선 "종교적인 양심은 지극히 주관적인 사안이라 객관적으로 심사할 수 있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종교계 일각에서는 "특정 종교에 믿는 신도에게만 병역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견해까지 제기되고 있다.

모두가 종교적인 신념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제도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제도적 보완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그중에서 가장 시급한 사안은 병역 의무를 거부한 사람들을 수용할 대체 복무제도를 정착시키는 일일 것이다.

이같은 시대적 분위기를 미리 예감한 것일까. 헌법재판소 역시 지난 6월 현행 병역법에 대체복무제도를 규정하지 않은 것은 헌법 불합치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오는 2020년 1월부터 대체복무제를 시행한다는 일정에 따라 각계로부터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를 여는 등 실무 작업에 돌입한 상태다.   

문제는 정부 차원에서 대체복무제도가 채 마련되지 않은 시점에서 대법원이 양심적인 병역 거부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데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체복무제도가 시행될 예정인 2020년 이전에 무죄 판결을 받는 사람이 줄을 잇는다면, 아무런 걸림돌 없이 사실상 병역 혜택을 받는 사람이 속출하는 부작용을 빚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른 또 다른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대체복무제도를 하루빨리 정착시키는 수밖에 없다. 정부 당국이 대체복무제도 마련을 위한 실무작업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이유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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