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새롭게 정의한 탐식
“왜 더 맛있을까” 끝없는 질문
 일상 속 '맛의 인문학' 항연



인간은 뭔가에 탐닉한다. 그게 음식이 대상일 경우, 탐식(貪食)이 된다. 오래전부터 많은 이들이 탐식이나 식탐을 부정적으로 봤다. 그레고리안 성가를 만든 교황, 성 그레고리(540~604년)는 식탐이 인간을 타락시키는 큰 죄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책 '탐식생활'은 탐식에 대한 이런 부정적 생각을 불허한다. 오히려 "탐식이 뭐 어때서"라고 얘기하는 듯하다. 실제 탐식을 새롭게 정의한다. 이 책에서는 음식의 맛을 좇으며 어떻게 먹어야 더 맛있는지를 파헤친다. 한 음식이 맛있는 이유에서 시작해 그 맛을 즐기며 먹는 방법과 실천으로 이어지는 맛의 인문학이 곧 탐식이 된다.
 
지금은 모든 이들이 맛을 탐하는 시대가 됐다. 책엔 사과·복숭아 같은 과일은 물론이고 감자·쌀과 같은 식량까지, 지금 한국인의 식생활을 바꾼 다양한 품종들이 개발되는 현장에서 취재한 생생한 지식들, 그리고 냉면·스테이크·스시처럼 최근 들어 한국인의 외식 생활에서 주류로 부상한 음식과 곰탕·불고기·우동처럼 한국인이 꾸준히 즐겨 온 한 끼 식사에서 찾아낸 더 맛있게 먹는 방법들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그렇다고 특정한 음식이나 식재 혹은 식당에 집착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지닌 고유한 맛과 그 맛을 내는 이유를 향해 끊임없이 질문할 뿐이다. 질문은 단 하나. "왜 더 맛있을까?"이다. 우동을 보자. 어느 특정 식당의 우동을 일방적으로 칭찬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 대신 불면 날아가는 밀가루가 요리사들의 지난한 노력과 개성 덕분에 탄력 넘치는 면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세세하게 설명한다. 결국 지금 먹는 우동에 대해 더 묻고 알아야만 더 맛있는 우동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꼬막을 맛있게 먹는 방법에 대해선 가볍게 익히는 게 맛의 포인트라 말한다. 조개가 들어가는 모든 파스타에 꼬막 살을 대신 넣으면 바다의 구수한 맛이 한층 더 깊어진다는 얘기도 빠뜨리지 않는다.
 
음식에 대한 탐미는 감자에서 특히 잘 읽힌다. 장을 볼 때마다 "이 감자는 무슨 감자에요?"라고 물어야 오늘 저녁 닭볶음탕 속 감자의 운명을 정할 수 있다는 저자. 국물에 포슬포슬하게 녹은 감자를 흰 쌀밥과 비벼 먹을지, 아니면 양념에 묻은 감자를 알맹이 그대로 먹을지 말이다.
 
복숭아와 사과에서도 하나의 과일 이름으로 뭉뚱그릴 수 없는 품종들의 개성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천중도백도·장호원황도·미백도·장택택봉·천홍…. 솔직히 복중아 품종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한국에서만 해도 무려 200여 종에 달하는 복숭아. 긴 여름 1주일 남짓한 기간 수확하고, 이내 사라지는 까닭에 자신의 취향에 맞는 복숭아를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얘기할 땐 저자의 탐식가다운 면모가 드러난다.
 
가을의 맛, 사과에서는 흔히 맛없는 사과 품종인 부사의 높은 당도와 적절한 산도, 촉촉한 수분과 기분 좋은 질감을 열심히 변호한다. 동시에 부사에 가려서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은 여러 사과 품종들의 독특한 개성과 풍미를 놓치지 않고 전해 준다.
 
스테이크의 풍미를 한껏 즐길 수 있는 간편한 방법들도 소개한다. 스테이크라는 목적에 맞는 고기를 골라, 적절한 과정을 지키며 굽기만 해도 일상을 바꿀 정도로 더 맛있는 고기가 된다는 것. 5㎜ 이하의 한국식 '로스구이'보다 훨씬 두꺼운, 완전히 다른 고기인 스테이크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는 김밥은 물론이고 떡·아이스크림·초콜릿, 먹고 마시는 음식의 즐거움에서 빠질 수 없는 술도 탐미한다.
 
책은 어떤 음식이나 식재료 혹은 품종이 다른 것보다 월등히 맛있다거나, 어떤 음식은 어떻게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일상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음식과 식재료의 맛 속으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는 탐식의 묘미를 알려준다.
 
부산일보 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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