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8년 진화의 비밀 밝혀낸 다윈
 20년 동안 미루다 '종의 기원' 출판
"수동적 회피 아닌 적극적인 선택"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1809~1882)은 20대 초반 5년간 비글호를 타고 항해를 했다. 그는 항해를 통해 에콰도르 서쪽 해안에서 1000㎞ 떨어져 있는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다양한 종의 흉내지빠귀를 발견했는데 각 섬에 각각 한 가지 종만 서식하고 있었다.
 
'군도 전체에는 여러 종이 서식하는데 왜 한 섬에는 부리가 날카로운 새만, 또 한 섬에는 부리가 뭉뚝한 새만 서식하는 걸까? 여러 박물학자가 섬마다 조금씩 생김새가 다른 이구아나와 거북을 발견한 이유는 뭘까?'
 
1838년 여름, 다윈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모든 종은 변화한다." 그는 생물의 범주가 신성한 계획의 만고불변한 표현이 아니라 끊임없는 변이의 결과라고 확신했다. 세상을 바꾸고 종교적 믿음을 산산조각낼 발견이었다. 하지만 이 발견이 세상에 알려진 건 그로부터 20년 뒤였다. 다윈은 지성사상 가장 위대한 진전 중 하나를 이뤄놓고도 이 문제에서 손을 뗐다. 과학 학술지에 논문을 보내지도, 대중매체에 글을 싣지도, 책 집필에 착수하지도, 심지어 출판사를 찾아보지도 않았다. 그는 무려 20년 동안 따개비와 지렁이 연구에만 몰두했다. 1859년이 되어서야 마침내 '종의 기원'을 출판했다. 다윈은 자신이 알아낸 것을 세상에 알리기까지 왜 그토록 오랜 시간을 기다린 걸까? 그는 자신의 책이 과학에 일대 혁명을 일으키는 여파로 시골에서의 조용한 삶이 흔들릴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 출신이었던 그는 아버지의 마음이 상할까 봐 걱정했다. 종의 발생 과정에서 신의 손길을 제거하는 건 가벼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루기의 천재들'은 미루기의 심연 속에서 위대한 성취를 탄생시킨 천재들의 이야기를 통해 미루기가 수동적인 회피가 아닌 적극적 선택의 결과임을 보여주는 책이다. 미국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미루기의 달인들로 문학, 미술, 건축, 과학사에 한 획을 그은 천재들을 소환해 그들을 위한 유쾌한 변론을 펼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만만찮다. 그가 생전 완성한 그림은 20점인데 그 중 두 개는 '암굴의 성모'로 제목이 같다는 사실! 1483년 밀라노의 무염수태 성도회가 레오나르도에게 예배당에 걸어놓을 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그림 제작을 부탁했다. 레오나르도는 7개월 안에 그림을 완성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 그림이 예배당에 걸린 건 그로부터 25년 뒤였다.
 
레오나르도는 무염수태 성도회의 예배당에 걸 그림을 몇 년밖에 안 미루고 완성했다. 하지만 형편없는 보수에 모욕을 느끼고 성도회에 복수하기 위해 그림을 간직하고 있다가 다른 사람에게 팔아버렸다. 이 그림은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걸려 있다. 복수를 당한 무염수태 성도회는 레오나르도에게 다시 그림을 의뢰했고 레오나르도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림이 완성되는데 15년이 걸렸다. 성도회가 제단 뒤에 이 그림을 건 것은 레오나르도가 7개월 안에 그림을 보내겠다고 약속한 때부터 사반세기가 지난 1508년이었다. 이 그림은 현재 영국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에 있다.
 
8개월 동안 소포 보내기를 미루다가 인간의 비합리적 행동을 다루는 행동경제학의 대가가 된 조지 애컬로프, 9개월간 의뢰받은 저택의 설계를 미루다가 고객의 방문 직전 두 시간 만에 완성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사례도 흥미롭다.
 
부산일보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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