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멜로디』 는 19년째 이어져 온 김해시 올해의 책 2025년 대표도서로 선정된 책이다. 이 책을 만난 것은 지난 3월 5일 김해 장유도서관 올해의 책 선포식에서였다. 김해FM 'H의 서재‘에서 6월에 다룬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은 이 책이 개인적, 관계적 측면에서 내적 갈등, 그 확장선상에서 발생하고 있는 갈등과 세계분쟁을 다룬 책이란 것에 이끌린 때문이었다.
문학동네 발간인 『빛과 멜로디』는 주인공 권은과 승준이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그 속에서 얽혀 든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들 각자에게는 인생이 걸린 긴 이야기일 수 있지만 작가는 압축된 형태로 소설을 풀어내고 있어서 시점과 인물이 종횡무진 따로 또 함께 펼쳐지는 형태다. 주요인물 정리를 한 뒤 다시 읽으니 그물코가 선명해지면서 사랑과 사랑의 경계점과 경로에서 사람이 연결고리란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책이다.
#줄거리
“눈이 내리고 있었구나.” 소설의 첫 문장이다. “그녀는 추위에 익숙하긴 했다. 일평생 익숙했다.(P29) 두 주인공 권은과 승준은 친구 사이다. 권은은 엄마가 집을 나간 뒤 이곳저곳을 전전하던 아버지도 거의 집에 없다시피 딸을 돌보지 않는 환경에서 살아간다.
“버려졌구나, 쓰레기처럼”(12살 권은이 한 생각)
반장인 승준은 담임이 시키는 대로 권은이 사는 빈민촌 반 지하방을 방문하고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는 방에 권은과 품고 있는 스노볼(엄마가 사준 것임)과 거의 삶을 포기하듯 한 상태에서 지내고 있는 상황을 마주한다. 이후 승준은 힘닿는 대로 여러 생필품을 구해다 주었고 아버지가 일본 출장에서 사온 후지 카메라를 훔쳐서 팔면 꽤 비쌀 것 같다며 권은에게 가져다준다. “승준이 건네준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면 이상할 만큼 하나도 춥지 않다고 거듭 생각하면서 카메라를 터득해 나갔다” (p31) 권은이 학교에 나타났다. 권은이 집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셔터를 누를 때 카메라 안에서 휙 지나가는 빛이 있거든. 평소에 숨어 있겠지. 옷장 뒤편, 빈병 속 같은 데? ” 사진에 대한 특별한 이력이 없는 권은이 분쟁지역 취재팀의 일원이 돼 해외로 나가는 길을 스스로 텄다.
‘빛이 피사체를 감싸는 순간의 온기가 좋아 사진을 사랑하게 됐노라‘는 권은의 말에 이상하게 이끌리지만 인터뷰하는 내내 그날 기자 승준은 권은을 알아보지 못한다. 분쟁지역에서 사고를 당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가 여성이란 점이 부각되면서 그 뉴스를 통해 소식을 알게 된 승준이 병문안을 가고 한쪽 다리를 잃고 반지하방에 살던 그 외롭고 추운 한 친구가 비로소 그 친구와 대면한다.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네가 이미 나를 살린 적이 있다는 걸.. 너는 기억할 필요가 있어..” 권은의 독백(p19) “너는 이미 나를 살린 사람이야. 그걸 잊지마.”(p89),
다큐멘터리 ‘사람, 사람들’ 작가인 게리 앤더슨의 여동생인 애나가 권은을 위해 집과 일자리를 제공해주었다. 팔레스타인 분쟁지역에서 사망한 오빠 게리 엔더슨과 백세를 바라보는 아버지 콜린의 일생을 다큐로 제작해 게리 앤더슨 사망 10주기에 함께 전시할 계획을 밝힌다. 권은은 게리 엔더슨이 남긴 파일 정리와 병원에 있는 콜린과 만나 취재하는 작업을 맡았고, 런던에 있는 애나 집에서 함께 살게 된다.
#2차 대전 이야기
애나의 아버지 콜린은 2차 대전 당시 독일 드레스덴 폭격에 참여한 조종사였고, 민간인에게 소이탄을 발사했던 불운한 군인이었다. 아들인 게리 앤더슨이 그 사실을 알게 된 뒤부터 부자 사이가 냉담해졌다. 콜린은 거의 백세 가까운 노인으로 파킨슨과 치매를 앓으며 아들이 죽은 사실을 알지 못한 상태이다. 반응이 없던 콜린이 또렷한 의식으로 자기는 군인이었고, 비행기를 만져본 조종사도 아니었으며 간단한 훈련 뒤에 출동했던 점, 동료들은 죽고 자신만 살아남았고, 민간인들이 소이탄 후유증으로 고통 받는 뉴스를 통해 자기가 했던 임무의 결과가 낳는 폐해를 안 뒤부터 양심의 가책을 받아왔다는 말을 은에게 토로한 다음 날 사망한다. 파일을 정리하던 권은이 게리 앤더슨도 아버지와 관련한 당시 자료들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며 부자간 애증의 바탕에 깔린 심적 고통과 사랑을 알게 된다.
#시리아 내전 이야기
권은은 불구인 자신의 한계를 알지만 가끔 시리아 난민촌에 가서 구호봉사 팀에 합류하거나 사진을 찍곤 했는데 그곳에서 살마를 만나게 된다. 살마는 시리아에서 탈출할 때 보트가 뒤집혀 어머니와 동생은 죽고 본인만 살아남아 레스보스 섬 시리아 난민 캠프에서 지내고 있다. 어릴 때 그 권은처럼 커튼 뒤에 숨어서 집밖으로 나오지 않는 살마, 권은은 승준에게 받은 그 DSLR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주면서 살마와 대화를 튼다.
‘사진은 다른 사람을 살리기 이전에 매번 나를 먼저 살게 했지.“( p89 권은이 살마에게)
살마는 차츰 마음을 열었고, 카메라를 배우면서 집밖으로 나오게 되고 애나는 살마가 영국 시민권을 받을 수 있도록 후견해 주고 집과 일자리를 구해준다.
“살마를 만난 뒤부터 그녀는 사람을 찍는 것이 쉽지 않았다.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 사진이 옳은지에 대해, 가령 배고픈 사람이나 다친 사람에게, 혹은 가족이나 연인, 이웃이 죽는 걸 목격한 적 있는 사람에게 카메라를 들이미는 것이 과연 맞는지에 대해, 그 사진 속 고통을 미술작품처럼 관람하는 것에 그치거나”(p55) 히잡을 착용했다는 이유로 지하철 입구에서 밀쳐져 다치고 결혼이 연기되지만 살마는 담담하게 견딘다.
#홀로 코스트와 팔레스타인 분쟁, 가자지구 이야기
“장이 작곡한 악보들은 지하 창고에서 날마다 죽음만을 생각하던 내게 내일을 꿈꿀 수 있게 해준 빛이었어요.. 그 악보들이 날 살렸다고 말이에요.”(‘사람, 사람들’ 시그널에서 알마의 말).
게리 앤더슨의 ‘사람 사람들’은 팔레스타인에서 2008년 12월, 한 달 동안 이어진 가자전쟁을 취재한 내용이다. 인터뷰이인 노먼 마이어는 유대계 미국인 외과의사로 퇴임 후 사비로 분쟁지역 난민을 지원하는데, 그가 구호품을 싣고 가던 트럭이 공격받아 사망한다. 암전으로 고요하다가 폭발음이 울리며 끝나는 다큐멘터리 마지막 장면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다.
한편 노먼 마이어의 어머니인 알마 마이어는 유태계 독일인으로 홀로코스트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이다. 장이 숨겨준 지하실에서 알마 마이어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장이 음식 밑자리에 매일 직접 작곡한 악보를 놓아두었고, 상상 속에서 바이얼린을 연주하면서 두려움과 죽음에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다. 장은 위험에 대비해 알마 마이어가 미국으로 탈출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알마 마이어는 미국에서 노먼 마이어를 낳았다. 그녀는 훗날 장이 그렇게 좋아하던 음악 인생을 포기하고 그 당시 빚을 갚기 위해 어렵게 살다가 사망한 소식을 듣는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라고 나는 믿어요." (노먼이 게리 엔더슨으로부터 장 베른의 죽음을 전해들은 후 했던 말)
#독소 전쟁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야기
승준은 우크라이나 전쟁 지역에 사는 나스챠와 인터넷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 보도하는데, 나스챠는 변호사이고 남편은 료사라는 약사이다. 이웃 할머니 옥사나는 러시아인이지만 우크라이나인 남편을 만나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다. 그녀는 이 전쟁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진다. 어릴 때 독소 전쟁을 겪었고, 큰 언니가 자원입대했고, 전쟁의 참상 속에 동생을 잃었고, 그 시신을 매장하지 못하고 장롱 속에 넣어두었던 끔찍한 기억이 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러시아인으로서 사과하는 옥사나는 전쟁에 아무런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생애 두 번이나 전쟁을 겪지만 이웃인 나스챠를 위해 어머니같이 따뜻하게 보살펴 준다.
승준은 나스챠를 탈출시키기 위해 권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뜻밖에도 살마가 나스챠의 후견인이 되어주었다. 나스챠는 런던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로샤에게 아빠라는 희망이 생겼다.
반전사진작가 권은이 유명세를 탔다. 권은의 사진은 “빛의 리듬과 호흡까지 담아냄으로써 비극을 잠시 잊게 하는 입체적인 판타지를 제공하면서도 그 판타지에 극적으로 대비되는 현실을 되돌려 인식하게 하는 지극히 사실적인 사진이라는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는다. 즉 미학과 저널리즘이 어우러진 사진이라는 평을 받는다. 권은이 국내에 들어와 전시회를 열기로 한다. 미술관에서 권은의 사진집 출간 기념 북토크에 승준과 민영 지유가 권은과 만난다.
#책을 읽고 나서
태엽을 감아주면 빛과 멜로디가 나오는 권은의 스노볼처럼-
이 소설은 권은이 알마 마이어 혹은 승준에게 써온 블로그 일기에서 지유에게 쓰는 두 번째 일기 편지로 마무리되는 소설이다. 기간은 2022년 11월 25일부터 2024년 2월 21일까지이다. 지금, 여기의 이야기라고 말한 조해진 작가의 말에서 분쟁이란 것이 타인끼리도 그렇지만 세계 속에 분쟁이 심각한 지금, 더구나 여기 안에서 폭발하기 직전인 상황과 맞닥뜨린다.
승준이 권은을 살리고, 그렇게 시작된 사람을 살리는 일은 권은이 시리아 난민인 살마를 살려 세상 밖으로 나오게 만들고 에나를 통해 영국시민권을 받게 하는 것으로, 그 살마가 남편 딜런과 함께 우크라이나 난민 나스차와 리디아를 영국으로 초청해 살리는 것으로 고리에 고리를 맞물리듯 끊임없이 태엽을 감아주는 사람이 있고 사람이 사람 살리는 일이 확장된다.
태엽을 감으면 멜로디와 빛이 나오는 스노볼처럼 계속 태엽을 감는 누군가가 있어 세상은 따뜻해질 수 있다는 것, 사랑은 그렇게 지속되는 거란 것, 사랑, 카메라와 셔터에서 나오는 빛과 스노볼에서 나오는 음악, 이 모든 것들이 ‘온기’라는 단어로 이 책이 주는 사랑을 전달 받는다. 따뜻한 소설이다. 스노 볼을 안고 낡은 카메라 부품을 어떻게든 구해서 승준이 준 카메라를 보물처럼 여기는 권은에게, 스노볼에 흩날리는 눈송이 같은 그리움이 있을 거라 추측하면 그 또한 한 줄 여백이 빛으로 뿜어지는 온기일 수 있으리라.
<H의서재>는 지역 공동체 미디어 김해FM이 제작해 라디오와 유튜브를 통해 방송하고 있는 ‘H의 서재’를 모티브로 한 동명 칼럼이다. 김해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하성자 작가가 방송에서 소개한 책 내용을 토대로 <김해뉴스> 독자를 위해 글을 재구성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