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쯤 우리 조상들의 식생활은 어떠하였을까? 시대가 변했으니 지금과는 다를 수도 있을 것 같고, 아니면 식문화의 습성만은 남아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한국인은 예로부터 대식(大食)하는 것으로 외국인에게 알려져 있었다. 송나라 사신이 적은 '고려도경'에는 고려 사람들이 많이 먹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는 대목이 있다. 개화기 조선을 방문한 미국인은 그의 저서 '은자의 나라 조선'에서 당시 조선인들의 식사법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우선 조선인은 식탐이 많다고 적고 있다. 식사 중에는 거의 말이 없는데 "이유는 말을 하다가는 입안 가득히 먹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선 사람들은 그만 먹겠다고 말하는 법이 없으며, 식사 때가 아니라도 먹을 것이 나오면 마음껏 먹어 치우려 한다고 기록했다.
 
고종 황제의 초청으로 조선에 온 미국인 퍼시벌 로웰이 관찰한 조선인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역시 '지칠 줄 모르는 왕성한 식욕'이었다. 조선인은 살기 위해 먹는다기보다는 먹기 위해 사는 것처럼 보인다는 표현도 보인다. 고고학자 에밀 부르다레는 조선에 총 4년 정도를 체류하면서 '대한제국 최후의 숨결'을 집필한 프랑스인이다. 그는 끝이 없는 조선인의 식탐은 허기를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배불리 먹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배불리 먹은 어른들은 요란한 트림이나 부적절한 소리를 내면서 흐뭇해한다고 하면서 특히 배만 볼록한 어린아이들을 작은 요괴의 모습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대부분 기름진 고기가 아닌 섬유소로 가득한 보리밥과 채소로 구성된 식사라 열량은 작지만 부피는 상당했을 법하다.
 

또한 개화기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들의 일관성 있는 기록이 있는데 바로 지나치게 술을 많이 먹는다는 것이다. '상투의 나라'란 책에는 "조선인들은 일반적으로 술에만 의존하며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술을 마셔서 술에 빠져버린다"는 표현이 나온다. '금단의 나라 조선'이란 책에서도 "그들은 독주를 즐기며 식사 때에도 폭음을 한다. 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조선 사람들은 틈만 나면 술자리를 만들며 매우 무절제하다"고 하였다. 양주를 처음 마셔 보는 사람들이지만 놀랄 만한 주량을 보였음에도 놀라워하고 있다. "한 예로 우리를 방문한 한 관리와 그의 세 명의 수하들은 불과 반시간 만에 샴페인 네 병과 브랜드 네 병을 비웠다"는 기록도 전한다. 서양인들 눈에 비친 조선인들은 모두 대식가이며 폭주가이었던 모양이다.
 
폴란드 출신의 민속학자가 기록한 '코레야 1903년 가을'이란 책에도 조선의 음식문화에 대해 기록한다. 여기서는 주변국인 중국과 일본의 음식을 조선의 음식과 함께 비교하면서 기록한 것이 특징이다. 조선 사람들은 소화 가능한 것은 거의 다 먹으며 주식은 쌀인데 중국인보다 쌀을 많이 먹는다고 했다. 가루 음식이 많지 않으며, 쓰고 매운 조미료를 많이 쓴다고 적었다. 육식은 일본인보다 많이 먹는데 날고기, 비계, 내장도 즐겨 먹으며 특히 개고기를 대단히 즐겨 먹는다고 말하고 있다. 생선은 회를 먹으나 맵고 자극적인 소스를 뿌리며 작은 뼈다귀, 연골도 기꺼이 먹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아주 어릴 적 내가 보았던 나이 드신 어른들의 생활 모습들을 떠오르게 하는 것들이며 낯설게 만은 느껴지지 않는 모습이다. 100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문화가 바뀌어도 우리의 DNA 속에 아직도 옛 조상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일까?
 
지금은 식문화가 변화하였다고 하지만 전통의 것과는 달라져야 하는 것들이 있다. 우선 무병장수의 비결인 소식을 생활화해야 한다. 탄수화물의 섭취는 줄이고 양질의 단백질을 충분히 먹자. 맵고 짜고 자극적인 양념류를 줄임과 동시에 절제되고 소박한 음주 문화를 정착해야 한다.
 
바르고 건강한 생활 속에서 만들어진 식문화야 말로 우리가 후대에 전해줄 진정한 문화유산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해뉴스 /조병제 부산 체담한방병원장 한의학·식품영양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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