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디깊은 노(老)시인의 고뇌… "아직 쓰고 싶은 것 많다"

생전에 작품 전집은 물론 작품 연구집 발간에 이어 문학관까지 조성된 문인은 그리 흔치 않다. 45년 시조 외길을 걸으며 시조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린 이우걸 시조시인이 주인공이다.

그가 신작 시집을 냈다. 3년 만에 내놓은 12번째 시집 '모자'다.

반세기 가까운 세월동안 시조 외길을 걸어왔건만 '아직도 나를 대변할 어울리는 작품이 없다'(이우걸 전집을 다시 읽으며)는 노시인의 고뇌는 깊디깊다. 한 권의 시집이 주는 무게감이 남다른 것은 시조에 대한 그의 뜨거운 열정 덕분일 것이다. '시집이란 한 시인의 울음이 사는 집이다/슬프게 울거나 기쁘게 울거나/우리는 그 울음소릴 노래처럼 읽곤 하지만//가슴에 품어보면 한없이 정겹고/떼어놓고 바라보면 어쩐지 짠해오는/불면의 밤이 두고 간/아, 뜨거운 문장들'('시집' 전문)

노년에 이른 시인이 삶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에도 한동안 눈길이 머문다. '일부 노년 문학이 갖는 탄식과 적막의 감상에 함몰되지 않는 부분이 이우걸 시에 있다'는 김경복(경남대 교수)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이 시인은 '자신을 되돌아보니//용감하지도 못했다'('터미널 엘레지')고 고백하고 '처음에는 먼 길이라서 불행하다 여겼지요//내 몫의 길이 남아서 지금은 행복합니다//아무리 멀고 험해도//가야 할 길이라면'('길' 전문)이라며 현재의 삶을 받아들인다. '난장에 떨이처럼 내놓은 내 손을//생각 없는 여자 하나가 덥석 잡아주었다//그 일이 고맙고 미안해서//지금까지 살고 있다'('결혼' 전문)는 대목에선 지난 삶을 웃음으로 승화시키기도 한다. 노년의 삶을 넘어 삶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시인의 노력이 돋보인다. 이 시인은 "내 작품에 대한 비평문을 읽으면서 내 시조가 산문화됐다는 걸 느꼈다. 시조는 시대를 막론하고 운문적 효과 때문에 생명력을 유지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이번엔 단시조를 많이 썼다"며 "나이 듦을 의식한 것은 아니었다. 나이대에 따른 변화를 담아낸 폭넓은 시 세계를 통해 인생 전반의 안목을 보여주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 시인은 "문화 전반에 대한 생각을 담아낸 산문집을 발간할 계획인데 시조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글쓰기를 시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부산일보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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