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법·무예 뛰어난 무략가
'실사구시' 강조한 통치 철학



정조는 조선의 왕 중에서 태조 다음으로 말을 잘 타고 승마를 즐긴 군주였다. 정조는 군사훈련을 할 때나 궁궐 후원을 거닐 때도 말을 타고 다닐 정도로 승마를 즐겼다. 장수들에게 "말 달리기 연습을 부디 열심히 하라"고 당부할 정도였다.

정조는 뛰어난 궁사이기도 했다. 창덕궁 후원에서 무사들의 활쏘기 시험을 주관했고, 친히 나서서 활을 쏘기도 했다. 보통 5순, 즉 50발의 화살을 쏘곤 했는데 심지어 10순까지 화살을 날리기도 했다. 어지간해서는 잘 당겨지지도 않는 국궁으로 100발의 화살을 쏘아 명중시키는 것은 보통의 실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한마디로 정조는 문약한 군주가 아니었으며 병법과 무예에 뛰어난 무략의 군주였고, 말안장에 익숙한 왕이었다.

저자는 정약용·박제가·박지원 등을 등용해 조선의 문예부흥을 이끈 탁월한 학문 능력을 지닌 지도자, 정치적으로 소외된 남인에서도 인재를 발탁해 중용하는 탕평군주, 정치적 다수파인 노론의 견제를 받으며 왕위에 올라 규장각과 장용영이라는 문무의 지지세력을 키워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정치가로서의 정조도 소개한다.

'말안장 위의 군주'라는 부제는 문무에 두루 능한 군주인 정조이지만, 평생을 말안장 위에 앉은 듯 긴장 속에 살았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 기득권 세력의 강력한 반발, 끊임없는 정쟁 등 왕실과 조정 어느 한 곳도 온전히 믿고 의지할 데 없었던 정조의 고뇌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정조의 개혁 정치에 대해 아쉬움과 과오를 지적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고질적인 당쟁을 줄이기 위해 언관의 권한을 대폭 줄이는 바람에 조선을 오랫동안 유지해온 공론정치가 변질했다는 것이다. 정조가 소설 짓기와 읽기를 금지했다는 깨알 지식도 이 책에 담겨있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물결이 아니라 나루가 있는 곳을 보라"는 정조의 당부를 소개한다. 물거품처럼 물결만 뒤쫓다 보면 나루터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게 될 터이니 시야를 높게 해서 다 함께 잘살 방법을 찾고 거기에 힘을 모아야 한다는 뜻이다. 연장 탓을 하지 않고 새 도낏자루를 만들 때까지 낡은 도끼라도 사용하는 정조의 실사구시 정신을 이 책은 전하고 있다.
 
부산일보 이준영 선임기자 gap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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