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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새겨진 불평등 세상
  • 수정 2018.12.26 09:37
  • 게재 2018.12.26 09:36
  • 호수 403
  • 12면
  • 부산일보 백태현 선임기자(hyun@busan.com)

 

 우리 몸 둘러싼 지식의 사회사
 권력·기록·상식 등 6개 핵심 키워드
"불평등·가난, 국가 적극 개입해야"



루드빅 히르쉬펠트는 혈액형을 '과학'의 도구로 이용해 민족과 인종의 특징을 처음 설명한 사람이다. 그의 의도는 '독일인의 피는 자신들이 지배하고자 하는 인종들과 어떻게 다른가?'를 밝혀내는 것이었다. 그는 1910년대 마케도니아 전장에서 16개 국가의 군인 8500명의 피를 뽑아 분석한 후 '생화학적 인종계수'라는 지수를 만드는데, A형 인자를 가진 사람이 B형 인자를 가진 사람보다 더 진화했다는 인종주의적 전제를 담은 지표였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인과 일본인의 차이를 드러내 조선을 식민지로 통치할 과학적 명분을 찾던 일본은 이 지표를 적극 활용한다. 조선에서 인종계수를 측정하면서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울수록 인종계수가 높다는 계산을 도출해 낸 것이다. 또 당시 법정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조선인이 일본인의 10%에도 못 미친다는 데이터에 대해서 이 책의 저자는 당시 조선인 전염병 사망자의 경우 그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한 이 책은 외국의 담배회사가 서울대 보건대학원에 '덜 해로운 담배 선택권', 즉 전자 담배에 대한 연구 제안과 함께 장학금 지급을 제안했지만 거절한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이 사건은 자본이 지식 생산 과정에 관여한 대표적인 사례로, 담배회사가 자신들에게 필요한 지식을 만들기 위해 과학자들을 어떻게 매수하는지 여러 사례와 연구를 통해 보여준다.
 
자기 죽음의 주도권을 잃어버린 시대의 상징적인 풍속도는 '병원에서 죽는 것'이다. 19세기 이후 산업화를 거치고 공중위생의 개념이 사회적으로 널리 퍼지면서 임종의 시간은 더 이상 삶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치러내는 일상적인 의식이 아니라 숨기고 피해야 하는 일이 되었고, 병원은 그런 '추한' 죽음을 사회적으로 은폐하기에 가장 적절한 공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철학자 이반 일리치는 이러한 변화를 두고 '죽음의 죽음'이라고 표현한다.
 
위에서 열거한 사례들은 "인간의 몸은 다양한 관점이 각축하는 전장"이라는 저자의 말을 뒷받침해 준다. 이 책은 지식의 전쟁터가 된 우리 몸에 대해 다루고 있다. 몸을 둘러싼 지식의 생산 과정에 대해 언급하면서 어떤 지식이 생산되고 어떤 지식은 생산되지 않는지, 누가 왜 특정 지식을 생산하는지,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을 만들기 위해 '상식'이라 불리는 것들에 질문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말하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 몸을 둘러싼 지식의 사회사라고 할 수 있다.
 
책의 구성도 그러한 의문들을 풀어줄 권력·시선·기록·끝·시작·상식 등 6개의 키워드로써 우리 몸에 아로새겨진 지식의 세계를 탐구하고 통찰한다. 권력은 어떤 지식을 생산해낼까? 보는 것과 보지 않는 것의 시선의 차이는 어떤 결과를 불러올까? 우리 몸이 세계라면 우리 몸에는 불평등이 기록되고 차별이 투영된다. 끝은 바로 죽음의 한가운데 있는 삶이다. '쓸모없는' 질문에서 시작된 과학과, 질문하지 않은 과학이 남긴 비윤리적 지식 생산 과정을 비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을 만들기 위해 '상식'과 싸우는 과학, 당위에 질문하는 과학의 역사를 살펴본다.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은 병원 진단 과정이나 의학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남성의 몸만을 표준으로 삼아 생긴 문제들을 지적하고, 신약을 개발할 때 고소득국가에서 소비되는 약만 개발되면서 저소득국가에서 필요한 약은 개발되지 못하는 등의 현실을 꼬집는다. 저자가 책 전반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지식' 그 자체에 대한 질문, 즉 그 지식에 담겨 있는 관점과 누군가의 이익 등 지식의 배경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데이터를 통해 인구집단의 건강을 분석하는 '사회역학' 연구자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데이터를 활용해 몸과 질병의 사회사를 이야기한다. 조선시대를 말하면서 중종 시기 티푸스로 추정되는 전염병의 실제 사망자 수 데이터를 제시하고, 중세 흑사병을 말하면서는 '14세기 유럽에서 흑사병으로 인해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사망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흑사병이 유행한 시기와 유행하지 않은 시기의 남녀 사망비를 분석한 연구를 소개한다.
 
저자는 사회의 제도나 폭력이 우리 몸에 어떻게 기록되는지 데이터를 통해 말한다. 소득수준에 따라 영유아의 뇌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자녀의 대뇌 회백질 크기가 달라진다는 연구를 소개한다. 대뇌 회백질은 뇌에서 정보 처리와 학습 능력을 담당하는 부분이다. 이 연구는 사회 환경에 따라 신체가 변화한다는 사례이다. 저자는 이 같은 연구 사례들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과 가난의 문제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산일보 백태현 선임기자 hy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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