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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아픔을 시적 자유로 극복하려던 시인 김수영문학의 향기 - 김수영문학관
  • 수정 2019.03.12 16:38
  • 게재 2019.03.05 15:30
  • 호수 412
  • 11면
  • 정순형 선임기자(junsh@gimhaenews.co.kr)
▲ 서울 도봉산 아래 자리잡은 김수영 문학관 전경.


분단의 아픔을 시적 자유로 극복하려고 노력했던 참여 시인. 이념으로 포장된 거짓을 배격하고 구속과 억압을 거부한 자유인 김수영의 삶과 문학세계를 알려주는 문학관은 서울 도봉산 아랫마을에 자리 잡고 있었다.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로 깔끔하게 단장한 문학관으로 들어가면 가는 펜촉으로 그린 시인의 캐리커처가 걸려 있다. 우수에 젖은 눈빛에서 어렵고 힘든 시대를 살다간 지식인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전시실로 들어가면 첫머리에 시인의 대표작 '풀'의 전문이 걸려 있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바람 앞에서 먼저 누울 만큼 작고 약한 풀이지만 바람보다 먼저 일어날 만큼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민초들을 그려낸 시인의 노랫말. 좌우 이념대립이 빚어낸 6·25 전쟁에 이은 4·19 혁명과 5·16쿠데타…. 그야말로 격동의 시대를 살다간 시인의 발자취를 소개하는 연보가 걸려 있다.

 

▲ 영원한 자유를 꿈꾸었던 시인 김수영.

 
이념적 구속·억압 거부한 자유인
혼돈의 시대, 남과 북 오가는 시련 
 
바람 앞에 누웠다 일어서는 '풀'의 노래
"시는 머리 아닌 몸으로 밀고가는 것"

붉은 파밭에 움트는 푸른 새싹처럼
암울했던 현실에 한줄 희망 메시지


 



일제강점기인 1921년, 서울 종로구에서 태어나 선린상고를 졸업한 시인은 스무 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미즈시나 하루키 연극연구소에 들어간다. 하지만 2차 대전과 더불어 시작된 학병징집을 피해 서울로 돌아온 시인은 스물세 살 때 8·15광복을 맞으면서 본격 시인의 길로 들어선다. 이후 좌우대립이 극심하던 8·15해방 공간을 살아가던 지켜보던 시인은 스물여덟 살 때 터진 6·25 전쟁으로 문화공작대라는 이름으로 북한 의용군에 동원되는 불행 속에서 탈출했다가 경찰에 체포돼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갇히는 곡절을 겪는다. 그 속에서 시인은 전쟁포로 신분으로 UN군 야전병원의 영어통역관 발탁돼 일하다가 서른한 살 때 석방되는 자유를 맛본다.
 
이처럼 극단적인 혼돈 속에서 이십 대를 보내면서 남과 북을 오가는 위기 상황을 경험했던 김수영은 '시'를 바라보는 자신의 눈길을 이렇게 정리했다.
 
"시는 머리로 짓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짓는 것도 아니고,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온몸으로 이행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바로 시의 형식이라는 것을…. 시는 문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민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인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시는 문화와 민족과 인류에 공헌하고 평화에 공헌한다."
 

▲ 시인의 유품을 보여 주는 2층 전시실.
▲ 문학관에 재현된 집필실.
▲ 시인이 남긴 육필 원고.

이처럼 민족과 평화를 염원했던 자유인 김수영은 마흔 살 되던 해에 찾아온 4·19 혁명으로 잠시 환희를 맛보았지만 불과 일 년 만에 들이닥친 5·16쿠데타를 말없이 지켜보아야 했다. 그런 엄혹한 현실 앞에서 무기력한 모습으로 대처했던 문단을 향해 시인은 김수영은 강력한 쓴소리를 남겼다.
 
"시인의 스승은 현실이다. 안타깝고 부끄러운 것은 뒤떨어지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시인의 태도이다."
 
그렇게 우울한 목소리로 독설을 아끼지 않았던 시인이었지만 다가올 앞날에 대해서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낙수가 바위를 뚫듯이 시인의 헛소리가 참말이 되는 기적을 이루는 때가 온다. 바로 그런 기적이 한 편의 시를 이루고 그런 시의 축적이 진정한 민족사의 기점이 된다."
 
그토록 암울했던 현실 속에서도 민족사에 한 줄기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 주려고 노력했던 시인 김수영. 영원한 자유인을 자처하면서 아련한 무지개를 찾아서 머나먼 여행길에 나섰던 시인 김수영은 마흔여덟 살 되던 1968년 퇴근길 과속으로 달리던 버스에 세상을 떠났다. 언젠가는 찾아올 '꿈속의 그날'을 그리는 희망의 노래를 남긴 채.
 
"삶은 계란의/ 껍질이 벗겨지듯/ 묵은 사랑의/ 껍질이 벗겨질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김해뉴스 서울=정순형 선임기자 junsh@gimhaenews.co.kr


*찾아가는 길
△ 서울시 도봉구 도봉동 404.
△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옮겨 탄 후 중부고속도로로 갈아타면 된다.
약 4시간 50분 소요.

*관람 안내
① 오전 9시~오후 5시 40분.
②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추석·설날 당일은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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