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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시 비판하며 민족 정서 노래한 낭만파 시인 홍사용문학의 향기 - 노작 홍사용 문학관
  • 수정 2019.03.26 15:26
  • 게재 2019.03.19 16:17
  • 호수 414
  • 11면
  • 정순형 선임기자(junsh@gimhaenews.co.kr)
▲ 동탄신도시 도심 공원에 위치한 노작홍사용문학관 전경. 꽃샘 추위에 봄눈이 남아 있다.


지주 아들로 태어나 문학의 길
순수문예 동인지 '백조' 창간

자신 위해 시집 하나 안 남겨
'추모의 방' 유품은 손자가 기증



퇴폐적인 서구시를 비판하면서 민족 고유 정서를 노래한 낭만파 시인. 일제강점기를 살면서 단 한 편의 친일시도 쓰지 않았던 문단의 선비. 자신을 위해서는 시집 한 권 남기지 않았지만, 민족을 위해서는 가진 것 모두를 내어놓았던 시인 홍사용을 소개하는 문학관은 경기도 화성시 돌모루 노작공원 입구에 마련되어 있었다.
 
고층 빌딩이 위용을 자랑하는 동탄신도시 도심에 자리 잡은 홍사용문학관. 현관 유리에는 '2019 노작 홍사용 창작 단막극제' 참가팀을 모집하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시와 소설, 희곡을 집필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극단 운동에도 참여할 만큼 넓었던 홍사용의 문학적 폭과 깊이를 보여 주는 것일까.
 

▲ 문학의 청년을 꿈꾸던 시절의 홍사용.

2층 전시실로 올라가면 시인 홍사용이 살다간 발자취를 보여주는 연보가 첫머리에 걸려 있다.
 
일본의 침략으로 대한제국이 저물던 1900년. 경기도 화성·용인 지역에 엄청난 땅을 가졌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난 홍사용은 휘문의숙에 다니던 시절 문예반에서 소설가 박종화를 만나 습작에 들어간다.
 
"푸른 가으로 흐르는 물이올시다/ 이 몸 사위어져서 검부사리 될지라도/ 어둡고 밝은 그림자에…/ 돌아다보아도 우리 시골은 어디멘지/ 꿈마다 맺히는 우리 시골집은 어디메쯤이나 되는지…"
 
문학관 전시실에 걸려 있는 작품 '푸른 언덕 가으로'도 그 무렵에 쓴 것이라고 했다. 이후 시인은 휘문의숙 졸업반이었던 열아홉 살 때인 1919년. 3·1 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돼 석 달간 감옥 생활을 한 후 고향으로 내려가 소일하면서 문인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 휘문의숙 재학시절 수학여행 간 개성에서 찍은 사진(왼쪽), 큰아들 결혼식 사진. 뒷줄 안경 쓴 주례가 춘원 이광수다.

그렇게 문단에 발을 들여놓은 홍사용은 스물두 살 되던 1922년,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문예 동인지이면서 근대적 낭만주의를 표방했던 '백조'를 창간한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가장 어여쁜 아들, 나는 왕이로소이다/ 가장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서…/ 그러나 시왕전에서도 쫓기어 난 눈물의 왕이로소이다…"
 
시인이 대표작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발표한 곳도 '백조' 3호였다.
 
그 과정에서 홍사용은 편집인을 맡았지만, 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1호 발행인은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 2호 발행인은 미국인 선교사 보이스의 부인, 3호 발행인은 망명한 백계 러시아인 훼루훼로를 내세워 발간하는 파란을 겪었다.
 
이후 홍사용의 관심은 연극으로 넓혀져 스물세 살 때 토교유학생 출신들을 중심으로 출범한 극단 토월회에 가입, 문예부장을 맡은 후 스물일곱 살 때 극단 산유화회, 스물아홉 살 땐 신흥극단을 조직해 손수 희곡을 써서 연출을 맡고 직접 출연까지 할 만큼 열정을 보였다.
 

하지만 홍사용의 이같은 문예 활동은 돈벌이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이었다. 막대한 극단 운영비를 마련하느라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가산을 탕진한 시인은 서른 살 즈음부터 방랑 생활을 거듭하다, 서른다섯 살 무렵부터 서울 세검정 근처에서 10여 년간 한약방을 경영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시인의 유품을 보여주는 '기억의 방'으로 들어가면 친필로 쓴 수필집 '청산백운'과 시조 모음집 '청구가곡'과 사진 84점 등이 전시되어 있다. 벽면에 전시된 사진 중 소설가 춘원 이광수가 주례를 맡았다는 큰아들의 결혼사진(1940년)이 인상적이다. 이처럼 기억의 방에 전시된 유품들 모두가 시인의 손자 홍승준 씨가 기증한 것이라는 안내문이 눈길을 끈다.
 
전시실 한 모퉁이에는 '추모의 방'이 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청년 시절을 일제강점기에 보내면서 전 재산을 털어서 문예 운동에 나섰지만, 정작 자신은 출판된 작품집 하나 남기지 못했을 만큼 깨끗하게 살다가 1947년 마흔일곱 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노작 홍사용.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가난한 농군의 아들처럼 욕심 없이 살다간 노작 홍사용의 삶을 기리는 청마 유치환의 글이 가슴에 와 닿았다.
 
"가장 어진 조선의 심장이/ 이날 또 하나 멎었나니…/ 아쉽게 불탄 그 애달픈 청춘의 실상/ 죽지 않는 하나 호롱으로/ 이 땅의 뒤따른 젊은 예지를 밝혔나니…" 
 
김해뉴스 화성=정순형 선임기자 junsh@gimhaenews.co.kr


*찾아가는 길
△ 경기도 화성시 노작로 206.
△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당진영덕 고속도 로를 옮겨 탄 후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면 된다. 약 4시간 소요.

*관람 안내
① 오전 9시~오후 6시.
② 매주 월요일과 추석 설날 당일은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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