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무숙 문학관 전경.



변혁기 전통 여인상을 긍정적으로 그려
데뷔작 '역사는 흐른다'는 TV드라마로

국제펜클럽 부회장으로 글로벌문학에 앞장
각별했던 고유문화 사랑에 '선비'의 품격


 

▲ 작가가 직접 쓴 육필 원고.

근대화 과정에서 드러난 삶의 진실을 여성적 시각으로 기록한 소설가. 일제강점기부터 6·25 전쟁을 거쳐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산업화까지 급변하는 세태의 속에서 한민족 고유한 여인상을 긍정적인 관점에서 그려낸 작가 한무숙의 문학세계를 소개하는 공간은 서울의 옛 도심, 대학로 주변 주택가에 자리잡고 있었다.
 
봄볕이 내리는 정원이 아담하게 꾸며진 기와집. 한옥 명장 심목수가 6·25 전쟁이 끝나던 1953년에 지었다는 전통가옥이다. 이후 작가가 세상을 떠나기까지 무려 40년을 살았던 집을 개조한 문학관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금융인 첫세대로 한일·신탁·주택은행장을 차례로 지낸 작가의 남편 김진흥이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를 위해 문학관으로 꾸몄다는 설명이 이채롭다.
 
작은 연못 뒤편 댓돌에 신발이 가지런히 놓인 양반집. 고풍스러운 유리창으로 가려진 대청마루 안쪽으로 들어가면 제1 전시실로 들어가면 넓은 벽면에 선글라스를 쓴 모습이 세련된 작가의 사진과 함께 소설가 한무숙이 살다간 발자취를 알려 연보가 걸려 있다.
 

▲ 연보에 실린 작가의 사진.

3·1 독립 만세 운동이 터지기 한 해 전인 1918년, 서울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작가는 2학년 때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만국아동 그림 전시회에 입상할 만큼 그림에 재능을 보였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이후 화가 지망생이 된 한무숙은 부산여고에 다니던 시절 폐결핵을 앓아 잠시 요양하던 시절, 작가 김말봉의 장편소설 밀림에 삽화를 그렸을 정도라고 했다. 하지만 작가는 스물두살 때 남편 김진홍과 결혼하면서 화가의 꿈을 포기해야 했다. 엄격한 양반 가문에 맏며느리로 시집간 한무숙이 화실을 차려놓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대적 상황이 아니었다고 했다.
 
아쉬움 속에 작가의 길을 선택한 한무숙은 스물네 살 때인 1942년, 소설 '등불을 드는 여인'이 문예지 '신시대'가 실시한 공모에 당선되었지만, 일본어로 썼다는 이유로 문학사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 바람에 작가 한무숙의 정식 등단은 서른 살 되던 1948년, 국제신보가 주최한 장편 소설 공모에 '역사는 흐른다'가 당선되면서부터라고 했다.
 

▲ 한무숙이 수많은 작품을 낳은 집필실.
▲ 전시실에 보관된 작가의 작품들.

조선 말기 동학군에 학살된 두 아들과 딸이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어낸 이 소설은 불과 40여 일 만에 완성한 작품이라고 했다. 집안 살림을 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국제신보가 장편소설을 공모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작가가 급하게 쓴 소설이라고 했다. 그렇게 탄생한 소설, '역사는 흐른다'가 1989년 KBS 대하드라마로 각색돼 당시 톱 탤런트였던 유인촌( 훗날 문화관광부 장관 역임)과 장미희가 주연을 맡아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는 설명이 인상적이다.
 
이후 칠순을 바라보는 1986년에 발표한 장편 소설 '만남'이 영어와 불어, 체코어, 폴란드어. 중국어, 에스토니아어 등으로 번역됐다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예순여덟 살 이라는 늦은 나이에 천주교 신자였던 다산 정약용의 가문이 박해를 받았던 사연을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내어 미국과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 시장에서 현지어로 번역되어 '한국의 혼'을 알렸다는 작가의 연보에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온다. 우리나라 소설의 글로벌화에 앞장선 선구자라는 표현이 나올법한 대목이다. 

▲ 한무숙이 직접 문양을 새긴 도자기.

작가의 손때가 묻은 육필 원고와 저서들이 놓여 있는 제1 전시실을 나와 마루로 이어진 제2 전시실로 들어가면 작가가 남긴 여덟폭 병풍과 도자기 등이 펼쳐져 있다. 비록 여성의 몸이지만 전통적인 선비의 품격을 갖추고 살았던 작가의 면모가 드러난다.
 
정원 오른쪽에 콘크리트로 지은 건물 2층엔 작가의 집필실이 보존되어 있다. 작가가 사용하던 책상과 필기구 등이 보존된 집필실을 나와 3층 계단으로 올라가는 길목엔 한때 화가 지망생이었던 한무숙이 직접 문양을 새긴 접시를 비롯한 도자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제3 전시실'이라고 적힌 3층 방으로 들어가면 작가 한무숙이 만년에 그렸던 그림과 장미와 봉황을 수놓은 방석 등이 놓여 있다. 그토록 각별했던 고유문화에 사랑을 소설로 기록하기 위해 노력했던 작가 한무숙. 그러면서 국제펜클럽 부회장을 맡으면서 우리 문학의 세계화에 앞장섰던 작가의 모습에서 항상 자신을 굳건히 지키면서 시대와 흐름을 같이 했던 문학사의 모범적인 사례를 찾아가는 듯한 발걸음이었다.
 
김해뉴스 서울=정순형 선임기자 junsh@gimhaenews.co.kr


*찾아가는 길
△ 서울시 종로구 혜화로 9길 20.
△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중부내륙고 속도로로 옮겨 탄 후 제2 중부고속도로 로 갈아타면
    된다. 약 4시간 50분 소요. 

*관람 안내
① 오전 10시 ~오후 5시.
② 매주 일요일과 공휴일은 휴관.
③ 관람을 원하는 사람은 하루 전 예약. 02-762-3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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