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이 이끄는 사회 변화
 풍부한 사례 들어 예측·방향 제시
"로봇의 반란·대량 실업 없을 것”



요즘 우리는 일상의 많은 영역에서 새로운 디지털 기술의 산물을 사용한다. 온종일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24시간 인터넷과 연결된 세계에서 살고 있다. 디지털 기술에 의해 급속도로 쏟아져 나오는 발명품은 우리가 책을 읽는 방법, 수업을 듣는 방법, 택시를 부르는 방법, 여행을 예약하는 방법, 식료품과 잡화를 배달하는 방법을 바꾸었다. 인간의 의사 결정을 인공 지능 알고리즘이 대체하는 일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처럼 도구는 인류의 뇌와 행동, 사회적으로 관계 맺는 방식을 바꾸었다. 인류가 도구와 기술을 만드는 동안 도구도 우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스마트 기기의 출현으로 '디지털 유인원'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디지털 유인원은 17세기 과학자, 철학자, 시인 등이 세계를 앞으로 전진시킨 것처럼 새로운 계몽 시대의 목전에 와 있을까? 아니면 로봇과 인공 지능 같은 마법의 기계가 너무 빠르게 진화해 우리를 앞서거나 소수의 디지털 엘리트가 나머지 우리를 위해 선택을 내리는 불편한 미래를 초래할까?

'디지털 유인원'은 호모 사피엔스부터 디지털 유인원까지 기술이 인간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주는 책이다. 21세기 인류가 스마트 기기의 출현으로 겪는 사회적 변화를 풍부한 사례를 들어 예측하며, 이 새로운 도구를 지혜롭게 관리해야만 경이로운 기회를 맞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인류의 새로운 존재 방식인 디지털화에 걸맞는 '확장된 지혜'의 필요성을 희망적으로 논한다.

세계적인 인공 지능 과학자와 사회 정책 분야에서 주목받는 이론경제학자인 저자들은 단순히 기술·과학적 변화를 예측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학적 관점에서 우리가 이끌어 갈 변화의 방향을 제시한다. 특히 경제학, 심리학, 철학, 공학, 그리고 선사시대를 포함한 인류 역사의 사회학적 맥락 속에서 기술 발전이 인류에게 미친 영향을 고찰하면서 답을 찾아 간다.

저자들은 디지털 유인원의 모델을 데즈먼드 모리스의 저서 '벌거벗은 유인원'(국내 번역본은 '털 없는 원숭이')으로 삼는다. '벌거벗은 유인원'처럼 '디지털 유인원'에서도 인간이 기본적으로 유인원과 비슷한 종이라고 전제를 한다. 하지만 인류는 '벌거벗음'(털을 잃음)으로써 다른 유인원과 결정적인 차이를 드러냈듯이, 현재 디지털 기술이 인류의 삶을 결정적으로 바꾸고 있다. 인간은 지금 '벌거벗은 유인원'에서 '디지털 유인원'으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초고성능 초고속 기계가 네트워크로 복잡하게 연결된 세계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저자들은 여기에 낙관적인 자세를 취한다. 그 근거로 로봇의 긍정적인 측면 두 가지를 강조한다. 하나는 '사회적 기계'다. 사회적 기계는 기계의 힘과 인간의 창의성을 결합해 유용한 결과를 내는 구조를 말한다. 가장 대표적이고 성공적인 집단 지성 사례가 위키피디아다. 가장 포괄적이고 이용하기 쉬운 위키피디아는 자발적이고 보수를 받지 않는 공동 작업으로 구성된다. 아주 기초적인 디지털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정기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약 10만 명이지만, 위키피디아에 등록한 사람은 3000만 명을 넘는다. 그들은 아마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두세 차례 편집했을 것이다. 특별히 열심히 편집하는 위키피디안은 1만 2000명에 달한다. 위키피디아는 그것이 세계가 공유하는 보편적 지식의 총체와 같은 것으로 발전했다는 사실이다. 디지털 유인원은 이처럼 집단 지식을 하나로 모으고 공유함으로써 '새로운 계몽 시대'를 열 것으로 기대한다.

또 하나는 '로봇과의 동반자 관계'. 이미 아마존의 인공 지능 플랫폼 '알렉사'는 시간을 물으면 알려 주고, 가정용 기기를 작동하고, 오디오 북을 읽고, 날씨와 교통 정보를 제공하는 등 많은 기능을 한다. 가사 일을 하고 아이나 노인을 돌보고 가까운 친구처럼 잡담을 나누고 조언과 위로를 건네는 로봇과 함께 생활할 날도 머지않았다.

새로운 디지털 기술은 우리의 사회생활, 인간관계, 일을 빠르게 변모시켰다. 인류는 아프리카로 떠난 이래로 생활 방식의 가장 큰 변화를 맞고 있다. 저자들은 로봇의 반란이나 로봇에 의한 대량실업은 없을 거라고 말한다. 인공 지능은 인간의 지능과 달라서 가까운 미래에 자의식을 획득할 수 없으며,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 맞게 새로운 직업을 계속 만들어 낼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초복잡 시스템에서 예기치 않게 생겨날 수 있는 문제를 경계하지만, 그 위협도 우리가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새로운 기술이 민주주의 제도의 근본적인 제약을 제거할 것으로 기대한다. 인터넷을 활용한다면 아무리 복잡한 문제도 시민 의견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새로운 힘이 인류에게 권능을 부여할지, 인류를 억압할지에 대한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셈이다.

부산일보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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