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자 속의 아코디언

박수현

 

아코디언 소리가 주전자에서 들린다
피워 문 이야기가 연기처럼 떠돌다
소란소란 담뱃재로 떨어진다
테이블 건너편, 수화로 나눈 대화가
하루 일상을 손짓으로 털어 낸다
발효된 언어는 알코올 도수만큼 익고 있다
청송주점 막걸리 잔이 출렁인다
푸른 밭을 싹둑 자른 부추전 위로
젓가락이 봄을 캔다
나의 언어와 다른 그들의 말은
탁자와 탁자 사이가 문처럼 닫혀 있다
소리로 뱉어낼 수 없는, 날 선 비명이 쌓인 퇴적층
수화로 풀어낸 공손한 음률을
몸짓으로 알아낸 신통력이 그들에게 있다
서로에게 찾아가는 시간이 빠르게 굳어간다
잔에 걸려 넘어지는 음계가
사람들의 소리를 밀쳐내고 아코디언 소리를 낸다
나는 알아듣지 못할 수화를 끓이는 주전자
아코디언처럼 접혔다 펼쳐놓은 저녁이 발화점을 향해 걸어간다


<작가노트>

아코디언처럼 접혔다 펼쳐놓은

비가 오거나, 계절이 바뀌는 길목. 어스름이 지는 저녁 때, 지친 일상을 털어내며 삼삼오오 모여 주점을 찾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직장동료나 친구들을 만나 노란 양은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나 항아리에 담은 동동주를 마셨던 추억도 있지 않을까 싶다. 파전에 부추전을 곁들여 소소한 이야기가 발효되어 알코올 도수만큼 익어가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을 것이다.

한때 김해에서 진해로 문학 공부를 일주일에 한 번씩 다녔던 적이 있다. 수업 후 문우들이 자주 어울려 허기진 배를 채우면서 간혹 막걸리에 파전을 먹기도 했다. 술잔을 사이에 두고 수화로 대화를 하는 건너편 테이블 일행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알아듣지 못할 손짓은 낯설었다. 그들만의 대화를 훔쳐보는 나는 막걸리 주전자에서 불현듯 아코디언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코디언처럼 접혔다 펼쳐지는 하루 일상 속에서 소리로 내뱉는 말이나 손짓으로 나누는 수화가 서로에게 공감할 수 있고, 동행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따뜻한 시간이다.

 

▲ 박수현 시인

 

·<한울문학> 시 등단
·김해문인협회 회원
·가야예술진흥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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