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문화센터 바로 옆엔 예쁘장한 국공립 대청어린이집(2007.9, 원장 김미숙, 정원 76명)이 있다. 오늘 발걸음의 시작이다. 어린이집 뒤에 있는 대청공원의 솔과 산수유 밭을 지나면 그 끝머리 오른쪽에 고동색 나무 계단이 있다. 그리로 오르면 다리처럼 생긴 목재데크의 곧은길이 나타나는데, 벼랑같은 왼쪽 난간 아래로 창원에서 김해로 가는 금관대로의 지하차도
2005년 9월 개교한 덕정초등학교는 39학급 1천118(남608) 명의 학생들이 김동만 교장 이하 68명의 교직원들과 함께 공부한다. '음악줄넘기'로 체력을 다지고, 지난해 경남초등학생영상제작경시대회에선 작품(금상)·촬영편집(대상)·연기(대상) 부문에서 상도 받았단다. 교가의 시작처럼 '팔판산 푸른 정기'를 받은 아이들이라
지난번 장유순례의 첫 걸음은 면사무소를 시작으로 부산 경계의 조만강 하구까지 나갔다가 발길을 돌려 해상왕국 가야의 항구가 발견된 반룡산 동쪽 끝자락 관동리유적공원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오늘은 반룡산 남쪽 율하리의 율하·율상·율곡마을, 서쪽 관동리의 죽림·화촌·팔판마을, 대청리의 갑오마을 일대를 돌아보려 한다
김해 순례의 발걸음이 시내를 벗어나게 되었다지만, 읍면의 남은 지역이 너무 넓고, 많은 동네의 얘기를 다 하기엔 어느새 힘이 부친다. 이제부터 찾아가는 8개 읍·면 지역의 넓이는 지금까지의 8배 이상은 될 것 같다. 지금처럼 돌다간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겠고 지면이 허락할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1개 면을 1회에 우겨넣어 볼까?&q
지난해 12월 1일 김해뉴스의 창간과 함께 김해의 구석구석을 찾아 걸으며 김해의 어제와 오늘을 얘기하기 시작한 지 꼬박 1년이 지났다. 오늘로 28번째나 되는 발걸음이건만 시내를 다 돈 것도 아니고 읍면 지역은 아직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다리도 아프고 입도 마르지만 시가지의 북부를 도는 오늘로 시내는 일단락지을 수 있겠다는 기쁨에 스스로를 격려한다.연지공
나비공원이라고 특별히 나비가 많은 건 아니다. '나비가 춤추는 마을'이란 오래된 동네 이름이 공원에 붙혀지게 되었다. 차가워진 날씨 때문인지 광장바닥에 깔린 붉은 벽돌과 노란나비 문양 위에 부서지는 아침 햇살이 오늘따라 따뜻하다. 한국1차(1996.12, 1천530세대), 덕산(1997.3, 900세대), 서광(1997.3, 336세대) 아파트 숲에 둘
지난번에 걸음을 멈추었던 내외동주민센터에서는 오늘도 주재순 동장과 15명의 직원들이 3만325세대, 8만7천577명(여 4만3천875명)의 주민들을 돌보고 있다. 흰색 벽과 모스그린 색 유리창의 조화가 산뜻한 4층(지하 1층) 건물에는 행정업무 이외에도 주민들을 위한 에어로빅과 헬스장, 예식장, 노인휴게실, 일반인과 초등학생의 강좌를 위한 강의실, 미니도서
지난번 걸음을 멈추었던 생명과학고를 나와 왼쪽에 있는 '내외문화의집'으로 간다. 횡직선 무늬의 알루미늄 패널을 붙인 은백색 벽에 파란색 종직선의 각진 기둥 3개와 양옆에 파란색 사다리를 세운 것 같은 출입문 그리고 '내외문화의집'이라 쓴 고딕의 파란 글씨가 서로 잘 어울리는 건물이다. 눈여겨 보는 이는 별로 없겠지만 생명고쪽 벽에 종횡의 검은 직선으
내외동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경운산에서 내외동 돌아보기를 시작하려 한다. 경운산(378m) 등산의 들머리로 남쪽의 주촌고개와 북쪽의 동신아파트가 있고, 그 사이에 경운사나 수인사 뒤편으로 오르는 길도 있다. 전망대에 오르기 가장 쉽다는 수인사 뒤쪽 길을 택했다. 수인사 가는 아스팔트 비탈길 끝에 화살표 모양의 이정표가 정상, 주촌고개, 동신아파트까지의 거
지난 호에서도 역시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닌데, 저 혼자 바쁘게 종종 걸음질치다 지나쳤던 곳이 있다. 안동 육거리 남쪽 모서리에 위치한 안동문화의 집이다. 김해시가 설립 운영하는 5개 '문화의 집'의 하나로, 삼안동은 물론 동김해에서도 유일한 지역 문화 활동의 본거지다. 2002년 3월, 541.2㎡짜리 아담한 2층 건물로 오픈했던 안동문화의 집은 파
새 학기를 맞아 싱싱한 얼굴로 넘쳐나는 인제대 정문을 나선다. 1년 새 점포 100개가 생기고 200개가 망한다는 농담처럼 쉴 새 없이 바뀌는 상가풍경에 오가는 젊은이들로 언제나 활기에 넘치는 거리다. 원래는 어방동 안쪽의 안골로, 내동(內洞)이라 했을 만큼 좁고 경사진 길이지만 대학로를 만들려는 의지가 돋보인다. 컬러풀한 보도블록 위에 젊은 남녀 조각상이
신어산 서쪽 자락의 영운마을과 삼방동, 그리고 신어천 건너 어방동에는 학교들이 참 많다. 전국 20위권 대학으로 도약하고 있는 인제대를 시작으로 각 급 초·중등학교들이 줄지어 있다. 20년 전만 해도 신어산 자락을 따라 삼방동 한일·화인아파트에서 인제대로 반원형을 그리며 가는 삼안로나 그 위에 있는 영운초등학교 앞길을 걷다 보면,
지난 호의 소제목을 '신어산 사찰순례'라 해 놓고, 은하사 그러니까 서림사와 쌍벽을 이루는 동림사(東林寺)를 다루지 못했던 것은 필자의 무계획성과 요령 없는 글쓰기 때문이었다. 허왕후를 따라 온 장유화상이 서역을 위해 서림사를 세우고, 동쪽의 가야국을 위해 동림사를 세웠다는 창건설화처럼, 신어산의 사찰을 돌아보면서 은하사 등과 함께 다루어야 할 또 하나
오늘은 신어산을 내려간다. 인터넷을 뒤지다 보니, 신어산을 '가야의 올림포스'라 멋부린 이름이 눈에 띄었다. 신어산에서 가야의 유적이 발견된 적은 없었기 때문에 조금은 오버인 듯하지만, 이름 자체가 신령스런 산이고, 가락국 건국신화 관련 전승도 있으며, 영구암·천진암·은하사·동림사 같은 절들을 품고 있기에 그냥 지나
오늘은 신어산에 오른다. 지금 걷고 있는 동김해는 분산과 신어산 사이에 있는 마을이다. 북쪽 신어산을 꼭지점 삼아, 남쪽 김해평야를 향해 반쯤 펼친 부채꼴 모양의 마을이다. 시내를 도는 발걸음의 시작으로 시내 중심에 있는 분산에 올랐으니, 동김해를 도는 발걸음에서 동김해를 병풍처럼 둘러 감싸고 있는 신어산에 아니 오를 수 없다. 게다가 발걸음의 순서도 그렇
지난 호에서 활천고개를 넘었던 우리는 이제 동김해 지역을 걷고 있다. 어느새 동김해란 이름에 익숙하게 되었지만, 전통시대는 물론 20~30여 년 전만 해도 김해지도에는 없었던 이름이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부산~마산 국도14호선(김해대로) 북쪽 안동에 공단이 조성되기 시작했고,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분산과 신어산 사이의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진행되면서,
시청에서 나와 바로 동쪽에 담장 하나로 이웃한 팔각공원으로 간다. 좁지만 제법 울창한 숲속에 조금은 어색하게 보이는 3층짜리 팔각형 건물이 있다. 사찰 목탑 모양에 기와지붕도 얹었으나, 콘크리트로 만든 때문인지, 한 채만 우뚝 솟은 부조화 때문인지, 여유보다는 긴장감이 느껴지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불교나 전통문화가 아니라, 남북의 분단과 대치라는 긴
가락로와 분성로가 만나는 교차로에서 동쪽 활천고개 쪽으로 길을 잡는다. 조금 가면 종로길이라 쓴 아치가 보이는데, 그 안쪽으로 요즈음 새로 단장한 김해재래시장 상점가가 이어지고 있다. 안쪽 끝에서 만나는 작고 어긋난 교차로는 과거 김해읍성의 정중앙이었다. 남서쪽 모서리에 시간을 알리던 종루(鐘樓)가 있어 종로길이란 이름이 전해지는 모양이다. 종로길 아치 옆
오늘은 왕년의 메인스트리트를 걷는다. 아니, '왕년'이란 과거형은 온당치 못하다. 가락로 상권의 부활을 위해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상인분들과 부원동 마을의 부흥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주민센터, 시청 관련 공무원들께도 실례되는 말이다. 일제강점기 부산에서 마산 가는 국도 개설 이래, 어방동 인제대 앞거리나 내외동 중앙로의 등장 이전까지 국도
수로왕릉 건너편 김해축협에서 남쪽으로 내려가 처음 만나는 오거리가 있다. 분성로 308번 길(북→남), 분성로 302번 길(북→남), 가락로 49번 길(동→서), 김해대로 2325번 길(남→북), 김해대로 2273번 안길(서→동)이 만나는 다섯 갈래의 교차로지만, 신호도 없고 그리 크지도 않다. 공구상가 등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