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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아픔에 잊혀졌던 천재시인 오장환문학의 향기 - 오장환문학관
  • 수정 2018.09.18 17:46
  • 게재 2018.09.11 15:46
  • 호수 389
  • 14면
  • 정순형 선임기자(junsh@gimhaenews.co.kr)
▲ 오장환문학관 전경. 잔디마당에 우뚝 선 시비가 인상적이다.

 

1930년대 문단의 '새로운 왕'
교과서에도 실린 '절정의 노래'

광복 직후 우파 테러에 월북
북에선 남로당계로 몰려 요절


 

▲ 눈빛이 단아했던 오장환.

민족사의 비운을 안고 간 천재시인.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8·15 광복 직후 빚어진 좌우이념대립에서 희생된 시인 오장환을 기념하는 문학관은 충북 보은 속리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잔디가 곱게 깔린 문학관 입구 마당에는 시인의 작품을 새겨 놓은 시비(詩碑)가 인상적이다.
 
"나의 노래가 끝나지 않은 날은/ 내 가슴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새로운 묘에는/ 옛 흙이 향그리(중략)/ 나의 슬픔은/ 오직 님을 향하여/ 나의 과녁은/ 오직 님을 향하여(중략)/ 나의 노래가 끝나는 날은/ 내 무덤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시인의 노래에 등장하는 '님'은 도대체 누구였을까. 시인 오장환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님의 정체는 알 길이 없지만, 이십 대 초반 청년의 붓끝에서 '묘'와 '무덤'처럼 죽음을 암시하는 단어가 등장할 만큼 불우한 시대를 살다간 오장환. 과연 그는 시대의 희생양이었을까.
 
전시실로 들어가면 시인이 살다간 발자취를 보여주는 연보가 걸려 있다. 1918년에 충북 보은에서 태어나 휘문고보 시절 고향 선배였던 정지용을 교사로 만나면서 본격적인 '문인의 길'로 들어섰다는 오장환.
 

▲ 시인이 태어난 시골집. 문학관 오른쪽에 자리잡고 있다.
▲ 시인의 세계를 소개하는 전시실.
▲ 1937년 조선일보에 실렸던 동시.


"총이 웃는 것은, 전쟁 자신이 시인이기 때문이다(중략)// 선전 포고/ ~ ~ ~ ~저ㄴ파//칼과 칼의 불같은 사랑/ 불같은 포옹/ 이제 도서관을 갈거먹는 역사가는 백지의 처녀성을 유린할 것이다(하략)"

열일곱 살 어린 나이에 최초의 장시 '전쟁'을 발표한 오장환은 "문단에 새로운 왕이 나타났다"는 찬사를 받게 된다. 이후 서정주, 이용악과 함께 1930년대를 대표하는 '3대 천재 시인'으로 꼽힐 만큼 찬사를 받았던 오장환은 1947년 초등학교 5~6학년 교과서에 대표작 '절정의 노래'가 실리는 영광을 누린다.

▲ 북한에서 발간된 소련기행시집.

"탑이 있다/ 누구의 손으로 쌓았는가, 지금은 거치른 들판/ 모두 까~맣게 잊혀진 속에/ 무거운 입 다물고 한 없이 서 있는 탑(중략)/ 보드라운 구름 밟고/ 별과 별들에게 기우리는 속삭임"

그렇게 사랑받던 시인도 8·15 광복 후에 빚어진 좌우이념대립 구도를 비켜 가지는 못했다. 좌우로 패를 갈라 유명인에 대한 무차별 테러와 암살을 일삼던 시절 오장환은 북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시인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남한에서 월북한 '남로당' 계열 인사들과 가깝다는 이유로 주요 감시 대상 인물로 분류돼 활동에 제약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와중에 신장병을 앓게 된 시인이 치료차 모스크바로 떠난다.

"내/ 뒤끓는 가슴이/ 한 아름의 희망이 넘치는 꿈으로/ 국경에 가까웠을 때/ 두만강 건너/ 누구보다 먼저 손 저어 준 것은/ 그대 붉은 기"

▲ 시집 '나 사는 곳'의 속표지. 화가 이중섭이 그렸다.

그렇게 찾아간 소련(현 러시아)의 모습을 그려낸 시집 '붉은 기'가 1950년 5월 그의 마지막 시집이 되었다. 그로부터 불과 한 달 뒤에 터진 6·25 전쟁 때 잠시 서울로 내려왔던 오장환이 친구이자 동료 시인이었던 김광균에게 전해준 시집이 최근 미국 워싱턴 국립 문서 보관소에서 발견되었다는 해설이 적혀 있다. 당시 시인은 친구 김광균에게 북녘에서 고달팠던 삶에 대해 털어놓았다고 적혀 있다.  

"나 하고 분이 하고/ 못 쓰는 종이로 비행기를 접는다(중략)/ 우리 우리 비행기는/ 하늘나라 별아기를 태우고 올 테지"
 
이처럼 여린 감성을 노래했던 시인이 거의 ‘군가’ 같은 분위기로 계급투쟁을 부추기는 시를 쓰는 것이 가능했을까.
 
그런 갈등을 이기지 못한 탓인지. 시집이 발간되고 된 바로 그다음해인 1951년에 오장환은 북한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후 한동안 잊혀진 이름으로 사라졌다가 1988년 월북 문인 해금 조치와 함께 되돌아온 비운의 시인 오장환. 그의 작품 세계와 소개한 문학관을 둘러보는 과정은 현대사의 비운을 되짚어보는 듯한 느낌으로 이어졌다.

김해뉴스 /보은=정순형 선임기자 junsh@


*찾아가는 길
△ 충북 보은군 회인면 회인로5길 12.
△ 부산·대구 고속도로(80㎞)를 타고가다 경부고속도로(60㎞)로 갈아 탄 후 당진·영덕 고속도로(63㎞)로 옮겨 타면 된다. 약 3시간 소요.

*관람 시간
△ 매일 오전 9시~오후 5시.(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추석·설날 연휴는 휴관) 043-540-3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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