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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된 감각으로 문단지평 넓힌 모더니스트 박인환문학의 향기 - 박인환문학관
  • 수정 2018.09.11 16:16
  • 게재 2018.09.04 15:35
  • 호수 388
  • 16면
  • 정순형 선임기자(junsh@gimhaenews.co.kr)
▲ 바바리코트에 넥타이가 휘날리는 시인의 모습이 이채로운 박인환문학관 .

   

 시와 술 벗 삼아 낭만 노래한 천재
 도시 감성으로 허무 극복한 댄디보이

 1950년대 명동거리 재현한 전시실
 '세월이 가면' 탄생한 ‘은성 스토리’



 
시와 술을 벗 삼아 낭만을 노래하며 시대의 허무를 극복했던 시인. 8·15 광복 이후 6·25전쟁으로 이어지는 혼란과 좌절 속에서도 세련된 감성을 잃지 않았던 시인 박인환의 삶과 작품 세계를 소개하는 문학관은 강원도 인제군 설악산 자락의 작은 오지 마을에 자리 잡고 있었다.
 
문학관 앞마당에는 1950년대 명동백작으로 불렸던 댄디보이, 박인환의 상반신을 옮겨 놓은 동상이 서 있다. 두 손으로 바바리코트를 펼치는 가슴에 넥타이가 휘날리는 모습이 세련된 도시풍의 모더니스트를 상징하는 것일까. 유리로 장식한 전시실 입구 벽면에는 시인의 대표작 '목마와 숙녀'가 새겨져 있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중략)//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중략)//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전후 복구 작업이 한창 진행되던 1950년대 중반, 명동에 머물던 시절에 썼다는 작품이다. 어려웠던 시절,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예술적 감성마저 주체하기 힘들었던 시인의 낭만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겨 나온다.
 

▲ 박인환의 아내가 운영했던 책방 ‘마리서사(왼쪽)’와 대중가요 '세월이 가면'이 탄생한 선술집 ‘은성’.

 
전시실 안쪽을 들어가면 댄디보이 박인환이 월북시인 오장환으로부터 인수했다는 서점 '마리서사'가 재현되어 있다. 이 서점을 중심으로 시인 정지용과 김수영, 김광균 등 그 시대를 주름잡았던 문인들과 교류하면서 대화를 나눴다는 해설이 이어진다. 마리서사 옆에는 시인 김수영의 어머니가 충무로 4가에서 운영했던 빈대떡집 '유명옥'과 1950년대 문인들의 아지트로 활용되었다는 '봉선화다방' 등이 마치 영화세트장처럼 꾸며져 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유리창문에 '막걸리', '소주'라는 페인트 글씨가 적힌 1950년대식 선술집 '은성'이 재현되어 있다. 한때 탤런트 최불암의 어머니가 운영했다는 서민 술집이자 당대의 문인들이 막걸리잔 너머로 문학과 예술을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던 사랑방이라고 했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박인환이 시를 쓰고 대중가수 박인희가 노래를 불렀던 불후의 명곡, '세월이 가면'이 탄생했다는 술집이다. 그 사연은 이렇다.
 
매일 은성에서 외상술을 먹던 박인환이 어느 날 우연히, 남편을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술집 여주인의 사연을 듣는 즉석에서 시를 썼다. 그 옆자리에 앉아있던 작곡가 이진섭이 즉석에서 곡을 붙이고 때마침 가까운 곳에서 술을 마시던 가수 현인이 달려와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탄생한 노래를 듣던 은성 여주인이 "외상 술값은 안 줘도 좋으니, 제발 그 노래는 부르지 말아 달라"고 눈물을 펑펑 흘렸다. 마치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이 사연은 훗날 작가 이봉구의 붓끝에서 단편 소설 '명동'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는 후일담이 문학관 팜플릿에 기록되어 있다.

▲ 전시실 입구 유리 벽면에 새겨진 박인환 사진.

출구로 이어지는 벽면에는 시인이 살다간 발자취를 알려주는 연보가 걸려 있다. 1926년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나 경기공립중학교(현 경기고)와 평양의전(현 김일성대학 의과대학)을 중퇴한 후 서울에서 작품 생활을 하다 서른한 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시인의 삶만큼이나 간결한 연보. 세월이 흘러 시인 박인환은 떠났지만 그가 남긴 발자취는 그의 고향 인제에서 되살아나 문학관 전시실에 남아 있었다. 시인의 노랫말과 함께.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으나/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김해뉴스 /인제=정순형 선임기자 junsh@


*찾아가는 길
△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인제로156번길.
△ 부산·대구고속도로(80㎞)를 타고가다 대구에서 중앙고속도로(235㎞)로 갈아타서 설악로(57㎞)를 이용하면 된다. 약 4시간 50분 소요.

*관람 안내
① 매일 오전 9시~오후 5시 30분.
② 매주 월요일(법정공휴일 땐 그다음날)과 1월 1일, 설날 추석은 휴관. 033-462-2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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