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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들의 이별법시론
  • 수정 2018.11.21 09:24
  • 게재 2018.11.21 09:22
  • 호수 398
  • 19면
  • 김용권 시인(report@gimhaenews.co.kr)
▲ 김용권 시인

당신을 향해 날아오르고 싶은 사물들이 자세를 바꾸고 있다. 수려하게 가꾸어 온 자세를 버리고, 슬픈 소리마저 지우고 바람 속으로 가고 있다. 바람이 불면 내 몸을 빌려 울고 있는 것들이 떨어진다. 떨어져서 들판 더 깊은 곳으로 굴러가서 박힌다. 사물들은 제 모습을 다 써버리고 사라질 때, 그것이 마치 내 사랑의 통증처럼 날아오를 때가 있다. 그러니까 그것은 외롭고도 슬픈 사물들의 이별법, 그것을 읽는다.
 
외롭고 슬프다는 것은 바람의 들판으로 혼자 걸어가고 싶다는 것이다. 아무도 오지 않는 그 곳으로 걸어가서 붉은 옷감으로 지은 사랑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것이다. 한여름 풍성했던 꽃그늘 아래로 가서 떨어진 꽃잎들과 뒹굴고 싶은 것이다. 내가 너를 찾았지만 너는 그곳에 없을 때.
 
무지개처럼 현란한 색이 아니어도 좋다. 이때쯤 올려다보는 하늘의 푸른 색깔만 해도 충분할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막 지나간 비행운이 퍼지듯이 내 마음을 저 허공에 풀어놓는 것이다. 아무 이유 없이 떠나는 사람과, 아무 이유 없이 만나는 사람들, 그게 어디 이유가 없겠는가? 사랑과 이별은 수 천 년 흘러도 반복되는 것이기에 그 사랑과 이별의 방법도 가을 들판에서는 무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낮은 곳으로만 내려앉는 사랑, 안도현 시인의 가을 엽서를 읽는다.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 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 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낮은 곳으로만 자구 내려앉는 마른 낙엽들의 행보는 세상의 사람들에게조차 무엇인가를 나누어 주려는 듯이 떨어진다고 한다. 그것이 사랑이든, 이별이든 간에 사람 속으로 스며들어서 따뜻해지려는 것일까? 나는 사랑이 가난하여 그대에게 줄 것이 없다 하면서도 그래도 내려앉는 낙엽들처럼, 그대에게로 가고 싶다는 애절함이 몸 바꾸며 오는 이 가을로 걸어간다.
 
사랑은 한 가지 색깔로만 오래 걸어두는 습관이 있다. 사랑에 물들면 오로지 그 색깔만 보이는 것이다. 가을 단풍은 일시에 물이 들어 떨어진다 하여도 물든 나는 그대에게로 갈 수 없을 때, 내 몸은 우수수 바람에 떨릴 것이다. 눈물 없이 하루를 넘기기도 힘들 것이다. 사랑은 나도 모르게 조용히 물들어 가는 것이기에 찬 바람에 흔들린다. 문정희 시인의 가을노트를 베낀다.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몸을 떨었다// 못다 한 말/ 못다 한 노래/ 까아만 씨앗으로 가슴에 담고/ 우리의 사랑은 지고 있었으므로// 머잖아/ 한 잎 두 잎 아픔은 사라지고/ 기억만 남아/ 벼 베고 난 빈 들녘/ 고즈넉한/ 볏단처럼 놓이리라// 사랑한다는 것은/ 조용히 물이 드는 것/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홀로 찬바람에 흔들리는 것이지// 그리고 이 세상 끝날 때/ 가장 깊은 살 속에/ 담아가는 것이지//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옷을 벗었다/ 슬프고 앙상한 뼈만 남았다.
 
이별의 아픔은 말로 다할 수 없을 것이다. "그대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우수수 몸을 떨" 만치 아린 것이다. 문정희 시인은 가을을 사랑의 객관적 상관물로 끌어들여 이별의 아픔을 노래하고 있다. 벼 베고 난 빈 들녘에 볏단처럼 놓인 자신을 보고 이 세상 끝날 때 가장 깊은 살 속에 묻어두고자 스스로를 위무하고 있다.
 
사랑은 덧나면 덧날수록 더 아픈 것이기에, 슬프고 앙상한 뼈만 남아도 한 계절을 견디며 지나는 것이다. 전해져 오는 바람의 통음을 읽으면서 구원의 색깔을 그린다. 낮은 데로 내려앉는 사랑과,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몸을 떠는 사물들의 이별법을 배운다. 어떤 사랑의 통증이 굳어져서 흔들리는 들판에 놓인다 하여도 내 고백이라 말하지 않겠다. 내가 못 다한 노래, 못 다한 말들이 까아만 씨앗으로 남은 가을은 또 올 것이다. 오늘을 넘기듯이, 마지막 한 장 남은 달력을 쳐다보면서 나는 오늘의 이별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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