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지금의 시대는 왜 인문학을 요구하고 있는 것일까요? 인문학이란 간단히 말해서 인간이 그리는 무늬, 인간이 가야할 방향을 찾아가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의 발달은 부의 축적을 가져왔지만 인간을 기계화 시켜버렸습니다. 그러다 기계화 된 사람들이 기계로부터 해방을 외치면서 인간 본질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하는 강한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결국 인간은 인문학적 통찰을 통해 종속적인 삶이 아니라 주체적인 삶을 찾아보자는 것이겠지요. 여러 시대를 겪고 나온 우리들이 여기까지 와서 앞으로 나아갈
'검은 머리위로 유약을 들이부었습니다 속으로 번져야 하는 시간들이 투명하게 건너왔어요 번져서 녹아내리는 시간은 설렘만으로도 1250도, 이 열렬함이 평정의 고도입니다 두드리면 찰랑찰랑 맑은소리가 넘쳐요 몸을 섞던 첫 마음 그대로 실팍하게 살을 펴는 것입니다 네 속으로 녹아내리는 일이 고래로 아득합니다 달구어진 가마에는 아우성도 안치되어 있겠지요 더러는 물러터진 것과 흘러내리지 못해 뭉친 것도 있어요 아침이 오면 내다 버려야 하는 밤의 재료들입니다 어떤 것은 버리지 못해 빛납니다 어쩌면 이번 생의 가마는 본전을 버리고 망설임
시작인가 싶더니 벌써 1월이 다 지나간다. 희망과 다짐으로 일어선 하루가, 하루를 더하고 있다. 신용목 시인의 말처럼 '천천히 해를 따라 걸으며 늙어가는 무리가 있다면' 그게 우리일까? 꿈의 정거장인 밤을 지나면 영원한 사랑의 공동체로 걸어가서 지난밤을 확인하는 게 우리일까를 생각한다.콘크리트 둥지를 지나 쏘아지는 사선에 서면, 아스팔트바닥에 그려진 화살을 따라 우리는 날아간다. 세상은 과녁 아닌 곳이 없어서 쓸데없이 쏘아올린 살대가 방향을 잃고 부메랑처럼 돌아오기도 한다. 달리다가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라는 명을 신으
사물들의 체위는 고요하다. 창밖으로 떨어지는 햇볕의 고요함과 그것을 바라보는 고양이의 눈, 평온하다. 제 각각의 자리에서 빛나는 사물들, 평온하고 고요한 이름들에게 뜨거운 감정을 이입시킨다. 하나, 둘 무거운 침묵을 털어내고 사물들이 일어선다. 2018년의 감정 없는 사물들은 소리 없는 소리를 입고 가버렸다.지난해 뿌린 꽃씨가 올해도 피어오르겠다. 피어오르는 그 꽃을 확인하려고 봄바람은 또, 조용히 올 것이다. 가버린 날들은 가버린 데로, 나는 이곳에서 내일을 기다릴 것이다. 내일은 아무리 당겨써도 모자라지 않는다. 그러나 내일은
한 장 남은 달력을 보면서 찢겨 나간 페이지가 나의 찢겨진 일상 같아서 쓸쓸해진다. 아침마다 떠오르는 태양을 경배하며 365번의 가둠과 쏟아짐, 빗금으로 가득한 날이었다. 찢겨진 달력도 어떤 날은 불쏘시개로, 어떤 달은 아이들의 딱지로 접히기도 했겠지만, 나는 열두 장 달력을 넘기면서 행선지를 빗나간 종이비행기의 궤적을 찾아간다.구겨진 것들이 멀리 가지 못하고 가까이 있을 때가 있다. 시론을 게재하면서 시인으로서 얼마나 진솔하게 글을 썼는가? 그리고 독자들에게 얼마의 공감대를 형성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세상의 사람들은 각자의 길을
당신을 향해 날아오르고 싶은 사물들이 자세를 바꾸고 있다. 수려하게 가꾸어 온 자세를 버리고, 슬픈 소리마저 지우고 바람 속으로 가고 있다. 바람이 불면 내 몸을 빌려 울고 있는 것들이 떨어진다. 떨어져서 들판 더 깊은 곳으로 굴러가서 박힌다. 사물들은 제 모습을 다 써버리고 사라질 때, 그것이 마치 내 사랑의 통증처럼 날아오를 때가 있다. 그러니까 그것은 외롭고도 슬픈 사물들의 이별법, 그것을 읽는다. 외롭고 슬프다는 것은 바람의 들판으로 혼자 걸어가고 싶다는 것이다. 아무도 오지 않는 그 곳으로 걸어가서 붉은 옷감으로 지은 사랑
깊어진다. 뜨겁던 그 여름이 막차를 타고 떠난 듯이 휑하다. 가락의 온 들판이 비워지고 곳간이 채워지면 부농이던 아니던 간에 마음은 풍요로워 진다. 들판으로 나가면 추수하고 남은 지푸라기 태우는 냄새는 아득한 향수를 자아내게 한다. 이때쯤이면 오래 전, 시골의 풍경이 아련하게 겹쳐진다. 추수가 늦어지는 저녁이면 밥상에 둘러앉아 온 가족이 먹는 밥맛은 잊을 수가 없다. 구수한 된장국에 보리밥을 쓱싹 비벼 먹으면 장군감이라는 아버지 말씀에 숟가락에 더욱 힘이 가기도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집도 참 가난했나 보다. 부모님은 내색은
나무는 매일 천천히 걷는다. 그 아래로 내가 걸어가면 이름 모르는 나무가 말을 걸어온다. 이 거리를 한 번도 걸어 본적 없는 것처럼 걸어간다. 무더운 날이 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 나무의 이야기도 신선해 진다. 내 삶의 앞장을 덮어두고 뒷장을 열어본다.깊어지는 것에 대하여 생각한다. 한걸음, 한걸음 옮길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들이 나무의 속살을 타고 건너온다. 다 읽어 보지 못한 책처럼 다음 장이 더 궁금해지는 것도 나에게 전해지는 나무의 이야기가 신기하고 신비롭기 때문이다. 나태주 시인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
더워도 너무 덥다. 도시가 열섬이다. 입추, 말복을 넘겼지만 더위의 기세는 맹렬하다. 독한 술의 도수도 아니면서 40도를 넘어서기도 한다. 연일 방송에서는 사상초유의 온도를 갱신한다면서 열을 올리고 있다.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기조차 꺼린다. 그러다 보니 여름휴가를 집에서 보내는 홈캉스족, 가까운 호텔에서 즐기는 호캉스족 등, 새로운 신조어들이 생겨나고 있다. 불쾌지수가 올라가는 요즈음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보다는 호젓하게 즐기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리라. 8월의 여름은 수많은 울음을 남기고 있다. 울음이란 우리가 태어날 때 처음 일
나로부터 가장 멀어진 생각 하나가 세상의 가장 깊숙한 곳을 찌르는 순간입니다. 순간순간이 끝이고 난간입니다. 끝이고 난간인 순간을 나의 가장 가까운 곳으로 끌어당깁니다. 기억은 아물지 않는 상처들을 오랫동안 꿰매고 있습니다. 저녁이면 어둠에 쌓여 위로를 받는 상처가 새벽이면 다시 곪아 터집니다. 무더운 여름날이 지속되면 우리들은 시원한 계곡이나 풍광 좋은 유원지를 찾아갑니다. 먹을 것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족들과 함께 가는 피서야 말로 삶의 재미를 더하는 인간들의 행위이겠지요. 그러나 이 즐거운 행위 다음에는 골짜기 마다 쌓이는 쓰레
번번이 비상금을 털린다. 깊숙한 곳이라 생각되는 곳에 아무리 잘 숨겨도 아내는 쉽게 찾아내고야 만다. 매서운 탐색의 눈초리를 피해갈 수 없다. 숨기면 숨길수록 내 모든 것이 털리는 것 같아서 두렵기만 하다.이제 나는 숨을 곳이 없는가? 아니 더 숨길 것이 없는가? 하기야 빤한 아파트 구조물에 구멍을 낼 수도, 문을 달수도 없는 상황인지라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어릴 적에는 누구나 자기만 아는 비밀창고가 있었을 것이다. 오색구슬이나 딱지를 모아서 숨겨놓은 장소, 또는 어느 소녀에게 전달하지 못한 비밀편지 등을 아무도 모르게 숨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