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르는 여러가지 기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언론이다. 선진국은 선진 국민의 신뢰를 받는 중앙언론, 지역언론이 있다. 반대로 후진국은 독재자의 관변 신문, 홍보지는 존재하지만 언론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한국의 경우, 중앙언론은 활발하며 선진국 수준이다. 그러나 지역언론은 지역에 따라 편차가 심한 편이다. 부산의 경우, 부산일보와 국제신
속인다는 것은 고통스럽다. 그런 고통을 처음 경험하는 시기는 4~5세쯤이 아닐까.나는 어릴 때 집에서 약으로 조금 보관해 둔 설탕을 훔쳐 먹다 어머니께 매를 맞은 것이 그쯤이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 남의 도시락을 몰래 먹어버린 사건이 있어서 걸상을 들고 2시간쯤 학급 전체가 벌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 도시락을 먹었거나 먹는 학생을 본 사람은 쪽지를 적
학문의 즐거움은 몰두하는 데 있다. 무언가 가치 있는 사실을 배우거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새롭게 발견할 때는 춤을 추고 싶어질 만큼 기쁨이 솟구친다. 내가 현대시보다 고대가요 연구에 열심인 것은 한국 고대가요가 나를 몰두하게 할 만큼의 어떤 매력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신화를 연희적으로 구성시킨 굿판을 현용준은 성극의례라 부르고 있는데, 필
요즘 복지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지난날 '성장이냐 분배냐'의 논쟁이 추상적이었던 데 비해 요즘의 복지 논쟁은 구체적이다. 그래서 복지의 확대를 주장하는 쪽에선 무상급식에 이어 무상의료, 무상보육, 대학등록금 반감 등의 정책을 내놓고 있고, 이를 반대하는 쪽에선 복지의 확대는 성장잠재력을 약화시켜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불가능케 함은 물론 후진국으로 추락
부산의 한 실업계고 출신으론 처음으로 KAIST(한국과학기술원)에 입학사정관 전형을 통해 입학한 조모(19) 군이 성적 부진 등을 고민하다 2011년 1월 8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뛰어난 잠재력을 가진 젊은이를 잃었다는 것은 교육자의 입장에서는 통탄할 일이다. 그는 왜 그런 극단적 선택을 해야했을까.2009년 전국에서 150명을 선발한 KAIST
체코의 대동령이었던 극작가 하벨은 이란 연설에서 "몇 마디 말이 10개 사단병력보다 더 강력하다."라고 한 적이 있다.탈무드에도 말에 관한 예화나 교훈이 많다. "비밀을 지켜라, 혀로 말하기 전에 반드시 생각하라, 혀에는 뼈가 없다" "가장 좋은 것도 혀요 가장 나쁜 것도 혀다"
부산시립미술관에서 판화가 주정이의 작품을 본다. 화가의 눈에 비친 자연과 인간의 삶, 그것은 낯이 익은 것이어서 반갑기도 하고 낯이 설어서 우리의 주변을 다시 보게도 한다. 나무판에 그림을 새긴다는 것은 그리는 것과 달리 날카로운 칼맛을 지니고 있다. 아니다. 그의 서정적인 작품은 칼맛을 감추고 있다.〈기다리는 새〉. 목이 긴 새가 한 마리 나무에 앉아 무
오랜만에 김해 시내에 들러 홈 플러스에서 쇼핑을 했다.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홈 플러스 매장이 김해에 존재한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그 큰 매장이 사람들로 흥청거리는 모습을 보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김해가 이렇게 큰 도시일 줄이야! 도로도 넓고 도시경관이 전반적으로 깔끔한 '모더니티'를 연출한다. 세련된 도시형 아파트 단지 사이에 공원이 조성
많은 사람들이 '알 것은 다 안다'고 생각한다. 특히 정치와 관련하여 '정치인보다 국민들이 더 잘 안다'고도 말한다. 그러면서 정치인들이 국민을 잘 살게 하지 못하는 것은 그렇게 할 방안을 몰라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사리사욕 때문에 국민을 잘 살게 할 정책을 강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과연 알 것은 다 알고 있는 걸까? 그리고
책을 읽다보면 재미있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도라 마르란 여성이 그렇다. 도라 마르, 아름다운 여성, 그러나 고통에 짓눌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찢어버린 여인. 도라 마르는 피카소의 애인이었다. 그런데 피카소가 프랑스와 질로라는 젊은 여성을 새로운 애인으로 삼게 되면서 마르에게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다. 옷은 찢어지고 머리도 엉클어진 채 발견된 후 어떤 남자가
나는 충청도 사람이다. 경상도 사람이기도 하고, 전라도 사람이기도 하다. '머무는 곳이 곧 고향'이라는 생각으로 살아 왔기 때문이다.이 말에 대한 사전적 해석은 덮어두자. 수백 년 수천 년을 내려오면서 한 곳에만 붙박혀 산 조상 어디 있는가. 다른 성씨와 피를 섞지 않은 후손 또 누가 있는가. '어울려 삶'은 지역이나 이념보다 상위개념이다. 그럼에도
김해 생림 도요 마을에 정착하면서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요 마을 앞으로 흐르는 이 강을 따라 석탈해는 신라로 도주하지 않았을까.김수로와 치열한 결투를 벌이다 패배한 석탈해가 신라로 넘어 갔다면 바로 이 강을 건너지 않았을까. 그 이후 신라의 왕이 된 석탈해가 수 차례에 걸쳐 가야를 침공했다면 역시 이 강을 건너오지 않았을까. 마주 보이는 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