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불교 뿌리를 찾아서' 시리즈를 준비하고 연재한 지 꼬박 1년이 지났다. 그 사이 예상치 못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새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가야사 연구·복원 사업을 국정과제에 포함시키면서 잃어버린 왕국 '가야'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도 높아졌다. 최근 지역 불교계를 중심으로 가야사와 가야불교의 복원을 표방한 가야불교문화진흥원이 출범하기도 했다. 올 초 부산외대 이광수 교수는 를 출간해 허왕후와 가야불교의 인도 도래에 대한 진위 공방을 촉발시키기도 했다. 기획
인도에서 가야로 불교가 처음 전래됐다는 '가야불교'는 허왕후의 인도 도래와 불가분의 관계다. 하지만 여전히 사학계, 고고학계에서는 허왕후가 인도로부터 왔을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인식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이런 가운데 김병모 고려문화재연구원 이사장은 1994년 을 시작으로 2008년 등 여러 저작을 통해 허왕후의 인도 도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학계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김 이사장의 도발적인 질문은 이후 언론의 관심을 받았고, 인도에서 온 허왕후에 대한 대중
는 지난 1월부터 연재한 '가야불교 뿌리를 찾아서' 시리즈 종료를 앞두고 '가야불교문화진흥원'과 함께 '가야불교의 현재적 의미, 그리고 재조명'이라는 주제로 은하사 설법전에서 좌담회를 열었다. 좌담회는 여여정사 도명스님의 사회로 진행됐다. 은하사 주지 혜진스님, 가야불교문화진흥원 이사장 인해스님(바라밀선원), 강산문화재연구원 김용탁 원장, 가야불교문화연구회 박광수 회장, 김해도자연구소 배상법 소장이 참석했다. ■ 도명스님(여여정사)“향토사학자 발견 편린 엮으면 연결고리”■ 인해스
산지브 얀얄 저술 눈길‘팔라바왕국 왕자 한국 가서 결혼’ 줄거리칼파나 “아프리카 선단 파견기록 보면허황옥 바다로 가야 갔다는 주장 설득력”전문가들 “불교 바탕 교류했을 수도”달마 행적 보면 벵골만으로 전파 개연성인도 일정의 마지막 날 첸나이의 주정부 박물관을 찾았다. 19세기 영국 식민당국이 대영박물관 같은 시설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고 한다. 직원들이 한국인 기자를 보고 처음 건넨 말은 '엄마', '아빠'였다. 타밀어로 엄마는 '음마', 아빠는 '아빠'로 발
사라유 강~갠지스 강 거쳐 벵골만 연결말레이반도~남중국해 지나면 한반도 직행‘해상 실크로드’ 불렸던 바다 교역로 일치사르나트 박물관에 다양한 형태 불상 전시먄마르사원 발굴 유물, 당시 생활상 설명허왕후 고향에도 불교 성행했을 가능성허황옥(허왕후)이 가야로 떠난 출발점과 가야불교의 흔적을 찾아 '인도의 젖줄' 갠지스 강으로 유명한 도시 바라나시로 갔다. 아요디아(아요디야)를 가로지르는 사라유 강은 갠지스 강 하구와 연결된다. 허황옥 일행이 바다로 갔다면 이 경로가 유력하다. 갠지스 강은 인도뿐 아니라 방글라
아요디아, 쿠샨제국 시대 때 불교 성행굽타왕조 창건 전까지 불교사원 100여 개힌두 - 무슬림 갈등 탓 흔적 완전히 사라져부처 몸 씻었다는 단타하바나 연못만 존재지역 연구센터, 허왕후 이야기 전파 노력해양 교역로 통한 이동 주목해 조사 진행아요디아(아요디야)에는 밤마다 많은 '하층민'들과 어린이들이 휘황찬란한 분장과 의상을 한 배우들이 펼치는 고전극을 보기 위해 모이는 장소가 있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힌두교 교리를 알기 쉽게 설명하는 램리라 연극을 올리는 '아요디아 연구센터'다. 1986년 설립돼
허황옥(허왕후)의 흔적과 가야불교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보름 동안 인도 북부와 남부 지역을 찾았다. 일연 스님이 허황옥 이야기를 '가락국기'에 쓴 지 1000년 만에 그 실체를 추적하는 여정이었다. 김해시의 자매도시이자 힌두교의 성지인 아요디아(아요디야), 인도의 젖줄 갠지스강의 도시 바라나시, 아쇼카 대왕 시절 찬란했던 불교 유적을 자랑하는 사르나트, 부처가 진리를 깨달았다고 전해지는 보드가야, 한국어와 유사성을 갖고 있는 타밀어를 쓰는 남부도시 첸나이를 차례로 둘러봤다. 비행기서 만난 과학기술원 근무
해수관음 성지 금산 보리암원효대사 창건 시 세웠다는삼층석탑, 가야불교 연결고리역사학계 “고려 양식 관련성 낮아”탑 일부 파사석 가능성 배제 못해허왕후 일행 인도서 항해 때평형수 역할로 싣고왔을 개연성능선스님 “왜구 노략질 시달리던민초들에 허왕후 이야기 위안” 경남 남해는 섬이지만 선사시대 유적이 발견될 정도로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정주하던 지역이다. 전국에서 네 번째 큰 섬으로 농사와 어업이 성행했기 때문이다. 남해도 남쪽에는 해발 681m의 금산이 있다. 금산은 과거부터 소금강 또는 남해 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
수로왕 아들 7명, 장유화상 따라 수도반야봉 운상원서 정진하다 모두 성불사찰 앞 연못 ‘영지’에도 설화 전해져범왕·대비마을 이름도 가야불교 연관통일신라 이후 고승 머물러 ‘동국제일’수시로 쇠퇴 거쳐 70년대 통광스님 복원가야불교가 금관가야를 넘어 경상도 동쪽 끝자락인 지리산까지 확산됐음을 보여주는 현장
각종 고서에 존재감 있는 절로 기록돼 원감국사 등 중량감 있는 스님 거쳐가 조선 말 폐사 이후 이젠 흔적도 없어 석탑 부재, 승탑 등 동아대박물관 이전 상동면 차 군락지 인근 절터 위치 들어“가야시대에 이미 사찰 있었다” 주장도'일엽편주 거울 같은 물에 날아오니/ 공중에 빛나는 금벽은 절이로구나/ 고갯 머리 푸르름은 산 그림자
안동공단 남쪽에 공원 형태로 정비돼 등 옛 문헌에 '초현대'로 표기'거등왕 부름에 담시선인 배타고 온 곳'부처상 그려진 마애불, 아미타여래로 추정고려시대 양식과 흡사한 미타신앙 주존불김해지역 백성 생활에 불교 뿌리내린 징표자연 풍화에 마모 심해져 형체 불투명공단 근처 석조 문화재 보존대책 필요안동공단에는 금관
봉하마을 봉화산에 있었다는 작은 암자조선시대 이전 폐사지 됐을 가능성 높아 등에는 ‘자암산’ 기록 남아통일신라 마애불 인근이 소재지로 추정봉수대에서 백자, 옹기·기와조각 등 출토문화재청 “마애불 이전 건물지 존재 짐작”진영읍 본산리 해발 140m의 봉화산에는 가야시대 작은 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