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화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종이는 중국 후한시대(105년)에 채륜이 발명했다. 그러나 정작 중국에서는 고려와 조선의 종이를 더 높이 쳤다. 우리 민족이 만든 종이는 닥나무 껍질을 재료로 한 한지이다. 우리 선조들은 종이를 귀하게 여겼다. 쓰고 남은 종이 한 장 허투루 버리는 법이 없었다. 종이를 몇 번이고 되풀이 해 사용한 선조들의 검소한 생활,
일상적으로 접하는 주변의 소소한 풍경에서 문득 자연의 에너지를 느낄 때가 있다. 여린 꽃 한송이, 풀 한 포기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습관적 표현의 수준을 넘어서는 일종의 깨우침을 말한다), 그 사람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게 가능하다고 한다. 화가 조경옥이 그랬다. 조경옥은 어느날 온종일 낚싯대를 드리우던 못 기슭에서, 항상 앉아 있던 그 자리에
마을 사람들이 품앗이를 하며 모내기를 하는 봄, 흐뭇한 마음으로 잘 여문 나락을 베는 가을, 그리고 추석과 설, 정월대보름에 마을 전체를 흥겹게 들썩이게 했던 농악놀이를 기억하시는지. 농악대가 징, 꽹과리, 소고, 장구를 치며 길굿(길놀이)를 하면 하나 둘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판을 벌여 판굿(공연)을 시작하면 농악대를 둘러싼 사람들은 어깨춤이 절로 났다.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설레고 마음 떨리는 순간은 언제일까. 가마에 불을 때기 시작할 때이다. 흙으로 빚어내고 유약을 발랐으니, 이제는 불이 할 일만 남았는데 가마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최선을 다했으니 좋은 작품이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불을 땐다. 그 과정이 끝나면, 작품이 빨리 보고 싶어 서둘러 가마를 연다. 열기가 식고
각 나라 각 민족마다 특유의 춤이 있다. 다른 나라 다른 민족도 그렇듯이, 우리 전통춤사위에는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나라의 평안과 태평성대를 기리는 뜻을 춤으로 표현한 태평무, 불교적 색채가 짙고 우리 민속 춤 중에서도 가장 작품성이 높은 승무, 가슴 깊이 맺힌 한과 살을 풀어주는 도살풀이, 엄격한 규칙에 따라 정확한 동작으로 추는 학춤. 김
가야는, 그 실체를 규명하기가 어렵다. 역사 기록이 부실해서이다. 그래서 고분과 유물 등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 역사를 증명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인제대 역사고고학과 이영식 교수는 그 지난한 가야 역사 발굴을 위해 매진하고 있는 학자이다. 그의 연구실은 그 역사를 찾아나서기 위한 '전진기지'이자, '공장'이다.우리나라의 역사교과서에서 다루고 있
철의 발견과 더불어 인류 문명은 눈부신 속도로 발전했다. 금속이 강해지면서 전쟁도 다반사로 일어났지만, 인간생활에 필요한 도구의 수준도 크게 나아졌다. 금속공예는 그 덕에 시작됐다. 과학이 발달하고, 수많은 종류의 금속이 발견되고, 새로운 합금기술이 개발되면서 금속공예는 발전을 거듭했다. 금속공예의 기법 중에서도 '주금'은 오랜 옛날부터 사용해 오던 것
아동문학가 선용과 문학작품의 모태 '고향 김해'작가에겐 고향이 있다. 작가에게 고향은 태어나 자란 곳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작가에게는 문학작품의 모태가 되는 특별한 공간이 고향이 되기도 한다. 어디에 있더라도 언제나 마음이 향하는 곳. 아동문학가 선용에게 김해 한림면 장방리 골안마을은 그 둘을 다 보유한 고향이다. 아니다, 골안마을은 물론 김해의 모
'연두'는 연한 콩색, '농록'은 짙은 초록색, '군청'은 광택이 곱고 선명한 남색…. 한국화를 그리는 채색 물감의 이름이다. 예스럽고 품격이 느껴진다. 문운식은 이런 물감들을 사용해 우리가 잃어버린 고향마을의 정경을 드러내고, 언젠가 마음을 빼앗겼던 깊은 산속의 풍경을 펼쳐보이기도 한다. 그의 그림은 아무런 설명 없이도 마음으로 느
외동 한국1차아파트 앞 사거리에서 언덕을 오르다 왼편으로 길을 꺾으면, 공장처럼 생긴 건물이 하나 나타난다. 잔뜩 쌓여 있는 나무, 목재를 자르는 기계, 바닥의 톱밥…. 영락없는 목공장 모습이다. 입구의 간판이 아니었다면, 목공장이라고 해도 믿었겠다. 이곳이 '곡산서각공예연구실(외동 384의 4)'이다.곡산 이동신(74)은 경북 고령 출신이
수틀에 팽팽하게 매달린 비단의 아래 위로 수실을 꿴 바늘이 오갈 때마다 목단이 조금씩 피어났다. 고고한 학이, 연록색 풀잎이, 고운 무지개가 수놓인 붉은 비단, 화려하고도 아름다웠다. 자수장인 서도미(70). 그가 한 땀 한 땀 수놓은, 장수와 행운을 기원하는 또 하나의 세계였다.구산동 김해건설공고 앞 횡단보도를 건너, 자그마한 식당 옆으로 난 골목길을 따
문:가야의 유물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답:국보 제 275호로, 5세기 무렵에 제작된 '기마인물형토기' '기마인물형토기'는 김해의 대표적 상징물이다. 시청 앞을 비롯한 군데 군데에 이 상징물이 서 있다. 이 토기를 1천 개 이상 재현한 도예인이 있다. '가야토기 명인'으로 유명한 두산도예(진례면 송정리 347-2)의 강효진(61)이다. 김해 진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