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윤영무 씨가 '대한민국에서 장남으로 살아가기'(명진출판사·2004)를 펴냈을 때, 산문집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독자층이었던 중년남성들이 그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쉽게 드러내 보일 수 없었던 자신들의 속내를 책을 통해 들여다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책에 이어 또 한 권의 책이 중년남성들의 마음을 흔들어
TV 프로그램 '1박2일'을 비롯해 몇몇 프로그램에서 시골마을을 가끔 볼 수 있기에 우리는 시골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건 착각에 가깝다. 가끔씩 흥미로 보는 화면, 그것도 편집되어 방송하는 그 장면들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KTX 매거진' 에디터로 일하는 동안 '우리마을 이야기'를 연재하며 비로소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것은 우리 마을의 작은 도서관입니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한 말이다. 그가 다닌 도서관은 시애틀의 조그만 공공도서관이었다. 도서관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 빌 게이츠의 이 말 한마디가 말해주고 있다.세계 각국의 통화가치를 말해주는 '빅맥지수'로도 활용될 정도로 세계인의 일상 속에 스며든 맥도
각종 언론에 넘쳐나는 음식정보를 접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뭐니 뭐니 해도 먹고 사는 일이 제일 중요하구나, 하는 것이다. TV화면에서 표준어를 쓰는 20대 초반의 리포터가 전라도에서 홍어회를 먹고 맛있다고 감탄하는 장면 같은 걸 보면, 처음 접하는 음식을 먹으면서 그 맛을 어찌 제대로 알겠다는 건지 믿음이 안 가기도 하지만. 수많은 식당과 음식을 소개하면서
경상도 사람이라면 이 말을 한번쯤 써 보았을 것이다. '쫌!' 상대방이 하는 짓을 멈추라고 말하다가 마지막으로 내뱉는 경고의 의미일 때도 있고, 대화 끝에 제발 부탁을 들어달라는 애원의 의미일 때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단 한 음절로 자신의 의지를 강력하게 실어 발음할 때 쓰는 말이다. 아이들이 산만하게 뛰어다니는 장면이 성가실 때 "얘들아 조
막걸리 열풍을 타고 책도 여러 권 출간되었다. , ,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이다. 막걸리가 얼마나 몸에 좋은 술인지 영양학적으로 말해주는 책부터 어느 곳에서 누가 만든 막걸리가 맛
'내일 공연이 있는 자라면 어떤 이유로도 오늘 죽어선 안 된다. 쓰러지기만 하고 반드시 공연 시작하기 전까진 다시 살아나야 한다. 공연에서의 자기 자리를 지켜내야만 한다.' 음악감독 박칼린의 산문집 의 한 구절이다. 일에 관한한 엄격한 그녀의 자세를 보여주는 말이다. 누구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빠져 살 때는 그 일이 세상에서 가
아직은 한참 일을 해야 할 때이니 교통이 편한 지역에 집을 구해 살고 있으나, 어쩐지 집 주위에 1년 내내 야시장이 열리고 있는 듯하다. 낮이든 밤이든 조용한 순간이라곤 없지만, 건물만 벗어나면 대중교통편이 코앞이니 그러려니 하며 살고 있지만 가끔씩 내가 머물고 있는 이곳이 과연 나의 '진정한 거처'인지 서글플 때도 있다. 언젠가 보았던, 방을 세놓으면
'나는 눈이 아프도록 세상을 들여다보았다.' 신작 장편소설 을 발표한 소설가 김훈은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썼다. 그 소설을 나 역시 눈이 아프게 들여다보았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뇌물죄와 알선수재죄로 징역형을 받은 전직 군청공무원 아버지와, 민통선 안 국립 수목원의 전속 세밀화가인 스물 아홉 살 난 딸, 남편을 '그 인
'잊혀져가는 우리말'을 아쉬워하며 그 말을 살려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설마 우리가 일부러 우리말을 잊고 싶어서 잊었겠는가. 말이 없어지는 건 행위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물건을 사용하거나 행위를 하지 않으니 자연히 그 말을 쓸 일이 없어지고, 점차 사람들의 세상 속에서 설 자리가 없어져 잊혀진 것이다. 해가 지도록 동무들과 어울리며 놀던 아이들
시골에서 농사나 지으면서 살아볼까, 라는 말이 삶의 대안도 희망사항도 아니라는 걸 알만 한 사람은 다 안다. 귀농에 성공한 사람들의 책은 '정말 대단하다, 부럽다' 감탄과 주눅을 불러오고, 실패하여 역귀농 하는 사람들의 경험은 "나는 어림도 없겠구나" 겁먹게 만든다. 최영철 시인과 조명숙 소설가도 김해 생림 마사리에서 농사를 지었던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