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맑구나. 무척 맑아. 이처럼 우리 금관국의 미래도 맑으면 얼마나 좋으리.'왕은 기슭에 서서 은빛으로 물들어가는 해반천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시각은 진시를 지나 사시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는 벌써 두 시진째 해반천을 보고 있었다. 붉은 색감이 해반천에 물들어 있던 때부터 하얀빛이 감도는 지금까지. 질지왕은 고개를 들어 투명하게 빛나는 태양을 바라보
#1 김유신의 활터 '여기인가?' 붉게 머금은 빛이 금방이라도 대지를 태울 듯 맹렬한 기세로 동쪽 산허리를 난타하고 있었다. 태양은 노랗게 물든 혀를 쑥 내밀며 산자락의 돌무덤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유신은 지긋이 눈을 뜨고 그 돌무덤을 바라보았다. 저곳에 증조할아버지인 구형왕께서 누워 계신다고 생각하니 일순 마음이 아팠다. '망국의 한을 품고 누워 계
#1. 거등왕자의 비원, 모은암 창건낮달이 떴다. 봉황대 마당 동쪽 하늘에 하얀 보름달이 떠올랐다. 청일한 하늘에 떠올랐던 태양은 서서히 저물어 서쪽 하늘로 넘어가고 있었다. 도화 꽃잎이 하르르 하늘가를 맴돌았다. 어디선가 불어온 돌개바람. 꽃잎이 하나 둘 마당에 내려앉고 있었다. 그 꽃잎 사이로 들리는 낮은 발자국 소리. 하얗게 떠오른 낮달을 바라보며 비
# 독룡과 다섯 나찰녀의 악행'허어, 이거 참 큰일이로고.' 봉황대 궁궐 대전에 앉은 수로왕은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낮게 중얼거렸다. 이슥한 가을날 밤이었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대전 마루에 은빛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 등촉대 하얀 촛불은 바지직 소리를 내며 타고 있었고, 수로왕의 한숨 소리에 가끔 촛불이 연약하게 흔들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장유
1.불과 물, 쇠에서 태어난 세 선녀복숭아꽃이 도도히 천하궁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연분홍 꽃 이파리는 돌개바람에 날리다가 솜털 구름 사이로 가볍게 떨어졌다. 오색 무지개 찬란한 빛이 그윽하게 머무는 천하궁 내전. 옥황상제는 옥으로 만든 커다란 그릇 세 개를 앞에 놓고 인자한 미소를 띠었다. 세 그릇 안에는 각각 물과 불, 달구어진 쇠가 들어 있었다. 상제
#두 자매의 재회"아…아직 오지 않았는가?""곧 도착하신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시면…."여왕 비미호는 힘겨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초점을 잃은 듯한 그녀의 눈동자는 심하게 구겨져 있었다. 육십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초조함과 근심이 가득했다. 세월은 유수와 같다고 했던가? 태양의
#1 아름다운 여왕, 비미호(卑彌呼)하얀 꽃송이가 하르르 하늘에 휘날렸다. 꽃송이들은 돌개바람에 휘말리기도 하고, 산바람 따라 빙글 빙글 돌기도 했다. 사쿠라의 계절, 봄이었다. 여왕 비미호는 하얀 흙이 깔려 있는 궁궐 마당을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백토 위에는 붉은 여명이 조금씩 비치고 있었고, 그 위로 벚꽃이 켜켜이 쌓이고 있었다. "한 달
#1.부족장의 아들, 야로초저녁이었지만 밤공기는 차가웠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언덕에 작은 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열다섯의 작은 움집들. 긴 원뿔형으로 이루어진 움집들은 누런 갈대로 만든 것들이었다. 갈대들은 바닷가 근처의 모래밭에서 채취한 것임이 분명했다.임종 직전의 부족장 수노 "거북 머리 언덕 위신령스러운 나무 앞에 나를 묻
천년의 세월을 지나 인연을 만난 수로왕"장유대사, 그대가 총감독이 되어 지휘하시오"아유타국을 떠나며 품었던 불국토 건립의 비원그 꿈의 실현 앞에서 허황옥과 장유화상은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깊은 미소를 지었다 #1.명월산에서 만난 수로왕과 허황옥수로왕은 기다리고 있었다. 천년의 세월을 돌고 돌아 자신을 향해 오고 있는 인연을. 어디선가 실바
1.파사니사금의 고민'고민이로다. 이 일을 어찌한다?' 파사니사금은 토함산 중턱에서 아래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발 아래로 안개에 젖은 서라벌이 무연히 앉아 있었다. 푸른빛을 띤 안개가 바람 따라 조금씩 일렁이고 있었다. '음즙벌국이나 실직국은 둘 다 우리 사로국의 강역이 아닌가? 한울타리, 한집안에 사는 사이나 마찬가지인데 왜 그런 불미스런 일
#1 때는 서기 97년의 어느 봄날. 수로왕이 구야라는 땅에 대가락국을 세운지도 벌써 오십년의 세월이 흐른 날이었다. 가락국에서 서쪽으로 백 리도 넘는 길에 웅장하게 솟은 산이 하나 있었으니, 이름하여 지리산이었다. 그 지리산 자락 아래에 작은 궁궐이 하나 자리 잡고 있었다. 궁궐은 누군가의 임시 거처인양 급하게 만든 흔적이 역력했다. 궁궐 한쪽에 마련된
#1 따뜻하고 부드러운 2월의 햇살이 박물관 잔디밭에 물씬 내리고 있다. 벌써 겨울이 저만치 물러났는지 청명한 하늘에서 투명한 빛이 쏟아지고 있다. 나는 그 햇살을 받으며 쌍어문 양식을 지나 박물관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설이 바투 다가온 탓에 박물관 앞마당에서는 민속놀이가 한창이다. 야외에 마련된 민속마당에서 어린이들이 굴렁쇠를 굴린다, 널뛰기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