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술잔이 비었다최석용 친구야술잔이 비었구나삶이 고달파 찾아왔는데너 또한 시침에 찔려 버둥거리며 살아왔구나친구야술잔이 비었구나오늘밤은살아온 인생을 고함치며이태백이 달도 담아보고헤밍웨이 바다도 마셔보자꾸나친구야채색되어버린우리 인생의 도화지에오늘밤 하얀 물감을 뿌려설레임의 백지를 만들어보자친구야오늘밤은별에게 찔려 아파보자꾸나 다시 아파하고 싶은 그대에게…청년 때 참 꿈도 많고 탈도 많았습니다.몇 푼 안 되는 돈으로 친구들과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며 세상을 다 마실 것처럼 호기도 부리고 어떤 땐
단풍잎이 아름다운 이유양민주물끄러미 창밖을 본다맑은 가을 햇살 아래젊은 단풍잎 늙은 단풍잎 어우러져날씬한 다리를 뽐내며 춤을 추고 있다바라보는 시선에 매혹되어붉은 치마를 팔랑대며캉캉을 추고 있다단풍잎은언제 떨어질지도 모른 채춤을 추고 있다 “노을처럼 저무는 아름다움”가을은 참 쓸쓸하다. 사무를 보다가 창밖으로 눈길을 주면 붉은 단풍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여름의 태양에 얼마나 시달렸으면 저리도 붉을까. 저무는 저녁노을같이 한 생을 마감하는 모습이 저리도 아름다운데 정작 자신은 죽음을 잊은 채 춤을 추고 있다. 아니,
은하사의 가을윤주희잉태를 위해 바빴던 몸짓으로빈자리 차곡차곡쌓아 두었던 단풍의 밀어쭉정이가 된 가슴에 공허를 이룬다세월의 이랑에 틈새가 생겼다연이 다하면 결국은 사라지는가?낙엽빛에 반사되어옮겨가는 발길마다 안겨드는 시린 내음투명한 쪽빛 하늘가잡을 수도 없는 산그리메탱탱한 가을 정취에팽팽한 고요가 詩꽃을 피운다“가을이 그림되는 절간”은하사의 앞마당을 들어서니, 가을은 절간 속의 그림이 되어 대웅전 처마끝 풍경과 함께 고만한 위치에 바람 없이 걸려있다.빌고 또 빌고, 천년만년 불어대는 그 어떤 바람 앞에서도, 꺼진 적 없을
노인 - 낙동강 399서태수 시인초겨울 햇살 아래 마른 낙엽 졸고 있다한 점 물기 없이 다 증발한 무심한 빛늪으로 오도카니 앉은허연 강의 빈 껍질흘려보낸 깊이만큼 하염없는 흐린 눈은한 생애 굴곡 굽이 어드메쯤 멈췄을까담장 위 까치밥보다더 작게 웅크린 강모든 것 소진한 처연함의 본질한적한 시골, 초겨울 양지바른 담장 아래 웅크린 노인의 모습을 한 점 수묵화로 그렸다. 긴 생애 모든 것을 소진한 노년의 모습이다. 무심하게 보이기도 하고 처연하게 읽히기도 한다. 그리하여 당당했던 강의 한 생애가 낙엽으로, 강의 껍질로, 까치밥
날갯짓이 그립다최경화 햇볕 쏟아지는 창 너머화환을 쓴 구름 얼굴연꽃 닮은 미소로 방안을들여다보는 절집오월 중순이면어김없이 찾아오는 뻐꾸기처서 문턱에서급한 세월에 쫓기며 떠날 곳을서둘러 가는 곱던 목소리풍경 끝에 두고올해는 두 번이나 들었을까뻐-국 그 적확한 소리산사를 휘돌아 닿을 수 없는여름 막바지에서너의 휑한 날갯짓이 그립다“그 많던 뻐꾸기는 어디로 갔을까”산에서 사노라면 산속에서 온갖 소리가 들린다. 간혹 신경이 예민해질 때도 있지만 자연의 소리를 듣다 보면 마음이 순수해지며 안정적인 위안을 받게 된다.
사진에 없는 것김미정좁은 쪽마루 끝에서 아버지가 웃고 있다앞니 사이 반짝이는 것이은인가 스텐인가제일 좋아하는 소주병도 같이 찍혔다어머니의 한숨과 눈물은사진 구석 너머 나에게만 보인다노여워하며 던지신 그 많은 살림살이들누구에게 던진걸까 이제야 생각해본다아버지의 보기 드문 웃는 얼굴그리워하게 될 줄이야사진 속 아버지 나이가 되고 보니마른 몸 열린 셔츠 속에 술에 절여진 슬픔,보이는 듯도 하다당신 집 쪽마루에서진정한 웃음 보이신단 한 장의 사진이눈을 뜨겁게 한다.“그리움은 그의 웃음을 소망하는 것…”계절이 지나가는
올 여름 해반천선용 깻돌의 키만큼도 안 되는 물발을 담근 채 길게 누운 둑길뱀허물처럼 꼼짝 않고 있다목이 타 시든 풀과 나무의 손가락질에비는 야단맞을까 봐 아예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어떡하지? 이랴이랴 게으른 소 같은 비를 끌고 올 수도 없고 하늘만 보고 있는데 빼꼼 문을 열고 내다보는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갑자기 소리친다"저기 어깨에 비를 잔뜩 짊어진 구름이 오고 있어!" 그 소리에 심술쟁이 염제 할아버지 깜짝 놀라 두리번거리고 둑길도 그제야 발가락을 꼼지락거린다. “아이들을 보라”올여름은 징그럽게도
새 한 마리김 경 희 별이 뜨는 저녁열아홉 신부는 빈방을 지키다무더운 날마침표를 찍고새처럼 날아갔다궤도를 이탈한 별처럼 자유롭게이 세상과 저 세상의 간격이나뭇가지에 펄럭인다. 마지막으로 부르고 싶은 그 이름…어머니… 그 이름 앞에 울먹이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면서 처음으로 불렀고 마지막으로 부르고 싶은 어머니, 그 이름 앞에 눈물이 그리움을 비집고 선다.열아홉 신부가 허리가 휘어지고 백발이 되어도 빈방을 지켰던 나의 어머니.늘 작은 새가 되고 싶다는 후렴을 쏟아낸 어느
내 동생엄마 곁에 앉은늦둥이 내 동생은 우리 집작은 등대 길라잡이지할머니, 할아버지, 삼촌우리 가족이안절부절못하다내 동생이 나타나면차례차례안아보고 뽀뽀하며내 동생은아무 소리도 안 했는데서로 서로 다투지 않게 하는재주가 있나 봐사랑을 먼 곳서 찾는 당신에게…집은 가족의 웃음소리. 아이들 떠드는 소리로 가득해야 비로소 포근하고 사랑스러운 집이 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재롱부리는 손녀나 손자가 있다면 더욱 따뜻한 집이 된다. 가족이 없는 텅 빈 집은 남의 집처럼 낯설고 을씨년스러울 뿐이다.가족으로 가
산하 박덕규많이도 보고 싶다 반세기가 넘도록언젠가 볼 날 있겠지 희망의 끈 못 놓는데보일 듯 보이지 않는 널 못 잊어 가슴 탄다듬성듬성 그리움을 쌓아 둘 곳 더는 없다푸른 영혼 있을 때 꼭 만나고 싶은 그대잡힐 듯 가까이 오다 또 저 만큼 서성인다너로 인한 잘 못이던 나의 생각 부족이던가슴 열어 시원하게 통곡 실컷 해보면돌담 밑 봄눈 녹듯이 다가오지 않을까아슬아슬한 기대감…이 나라 분단 이후 항상 통일을 염원해오다.1972년 7.4남북공동성명, 1991년 12.13남북기본합의서, 2000년 6.
열대야 윤주희까슬까슬빛이 바스러지고탱탱한 여름이 속살을 내놓았다선머슴 같은 햇살 속에길섶마다 오불꼬불한여름을 채색한다하늘까지 퉁기는대지의 열기에우렁찬 함성이 무르익는다세상이 온통 불덩이다고단한 삶에무언의 저항도 불덩이다세상의 불덩이가 폭발한다“그래도 절기는 못 속인다” 1994년 그해 여름, 폭염이 계속되면서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이 사망했다고 한다. 올해도 과연 살인 더위를 실감한다. 뉴스에선 올여름이 1994년 여름의 폭염 기록을 경신할 거라는 예보다. 계속되는 폭염에 대처하는 요령을 터득해 몸소 실천하면
땀나무에 관한 추억백미늠 고향집 강둑 아래 땀나무가 살았다비탈진 돌무지에 흰 뿌리를 드러내고언제나 웃는 얼굴로 팔을 벌려 반겼다말똥구리 아이들 무더기로 덤벼 들어뜀을 뛰고 까불며 가지를 분질러도가만히 실눈을 뜨고 땀만 뻘뻘 흘렸다얼간이 땀나무야 왜 말 한마디 없니엎어질까 무서워 오줌을 지리는 거지어깨로 물결을 그리며 먼 강물만 바라보았다시침과 분침위에 저울질 하며 사는 동안고향마을 꿈속에는 땀나무가 서 있었다반 평의 행복이 무언지 온몸으로 전해 주었다“일상에 떠밀려 살다보면…”온통 초록인 계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