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차, 영차' 구령에 맞춘 시끄러운 소리에 발걸음을 멈춘다. 축구장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소리다. 많은 사람들이 팀을 위해 투혼하는 모습이 내 발길을 잡는다.줄다리기는 대개 커다란 운동장이나 동네 널찍한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선수와 응원하는 사람들과 함성이 삼위일체가 되어 역동적인 경기의 진수를 자아낸다. 자기편이 이기기 위해 같은 편 사람들은 사력을 다하여 힘을 보탠다. 개인은 완전히 내려놓고 집단을 위해 온전히 사투하는 모습이다. 완벽한 일체감을 보여준다. 양 팀의 응원단장은 자신이 직접 줄다리기를 하는 양, 온몸
인생 50줄에 입문하여 맞이하는 사계절(四季節)은 10대, 20대에 미처 깨닫지 못한 굴곡 많았던 삶의 조미료를 첨가하니, 보석보다 더 빛나고 질그릇처럼 중후하고 신비롭기만 하다.봄은 입학, 졸업, 출발의 존귀함을 일깨워주고, 여름은 삶의 뜨거운 열정을 깨닫게 하며, 사색의 계절인 가을은 그리움과 예술을 통해 사람들의 감정을 순화시켜 주고, 겨울은 사람과 사람들의 36.5℃체온을 통해 나눔과 온정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계절이라 생각한다.이처럼 사계절(四季節)의 조화로움이 있기 때문에 1년 365일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있는
다사다난했던 기해년이 물러가고 경자년의 새해가 밝았다.유난히도 밝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또 한 해의 소망을 빌어본다.전년에 빌었던 소망이 비록 이루어지지 못하였더라도 다시 새로운 희망을 걸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삶에 큰 위로가 된다.해가 뜨고 지고, 아침이 오고 저녁이 오는 것처럼 한 해가 가고 또 새해가 온다. 해마다 달력을 새로 걸면서 사람들은 세월이 참 빠르다는 걸 느낄 것이다. 이천 년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라고 온 지구촌이 들썩거리던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새 천 년의 이십 년 문턱에 섰다. 하루 스물네 시간, 한 달,
참는 게 능사가 아니었다. 반나절 동안 견디던 통증이 나를 짐 부리듯 털썩 내려놓는다. 달래주려고 어설피 손댔더니 더 열불을 낸다. 오늘은 터뜨리기로 작정한 모양이다.언제부턴가 오른쪽 엄지발톱이 살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양말을 벗어보니 발가락 끄트머리가 벌겋게부풀어 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겨 파고드는 발톱을 삼각형으로 잘라내고 소독하는 것으로 버티었는데 결국 동티가 났다."어허 우짜노. 마취하면 좀 아플낀데."의사 말이 끝나자마자 뚝딱 치료가 끝났다. 통증이 느껴졌지만 걸리적거리던 유치를 빼던 유년의 기억처럼 골칫거리가
가을 끝자락 11월 29일 오후 4시.진영 한빛도서관에서는 해방공간 시기에 행동으로 실천했던 지식인으로, 농촌계몽 운동가로, 복음을 전하는 목사로, 교육의 선구자로 한얼학교를 설립한 겨레의 상록수 강성갑 선생님의 학술세미나가 열렸다.한 달 전부터 진영 거리거리는 강성갑 학술세미나 현수막이 한얼의 빛을 발하고 있었다. 평일 오후라 참석이 어렵겠다는 아쉬운 마음뿐이었는데 우연찮게 시간이 났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참석자가 많았다.1950년 8월 공산당이라는 누명을 쓰고 국군의 총에 의해 총살당한지 70년.기독교의 정의와 복음을 전하는
TV 켜기가 두렵다. 며칠간에 일어난 흉측한 사건과 사고들을 듣고 보면 다음날 시작하는 하루가 무거워진다. 정치인들의 막말과 저급한 행동, 불안한 경제, 각종 범죄가 난무한 사회는 문제가 된다.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이 늘어나면 그들은 극단적인 범죄를 저지른다. 차마 입으로 쏟아 내기조차 무서운 것은 천륜을 저버린 존속 살인이다.유교 도덕에서 규범화되어 있는 기본 덕목은 삼강오륜이다. 삼강오륜의 기본은 가족이다. 이것이 시대의 변천에 따라 달라졌다고 해야 할지 사람의 품성이 변해간다고 해야 할지 인간의 탈을 쓴 소수인의 행동에 말문을
25층의 거대한 시멘트 덩치도 휘몰아치는 겨울 밤바람에는 몸살이 난 듯 '잉잉' 소리를 내고 있다. 베란다 창틈 사이로 들어오려 다툼하는 바람들이 산귀신들의 혼령인 양 귀신소리를 낸다. 산자락을 잘라 지은 아파트라 죄를 짓고 사는 기분이다. 밖의 광란과는 달리 방안은 평온하다.결혼을 앞둔 어느 해 겨울, 우리는 그해 12월의 매서운 밤바람을 아무 보호막 없이 맨몸으로 부대껴야 했다. 남편과 나는 결혼을 앞두고 신혼살림을 차릴 방을 얻으러 다녔다. 12월 서울의 밤은 차고 매서웠다. 장남으로 태어나 동생들 공부시키느라
"엄마, 나 오늘 학원 안가면 안 돼?"아들의 말은 동의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가지 않겠다는 선포였다. 결석은 엄마 사전에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평소에는 하지 않는 말이었다. 2박 3일 수련회에 다녀온 여독도 풀리지 않았고 무엇보다 영어 숙제도 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들의 마음은 알지만 쉽게 허락하고 싶지 않아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각자의 말만 하고 홱 등을 돌려버렸다. 남편의 외출로 간단히 먹겠다고 선택한 짜장 라면이 다 불어터지고 있었다.돌아보면 내게도 저런 시간이 있었다. 친구들보다 유독 나만 많이 하는 것 같고, 나한
바람이 분다. 사시사철 불어오는 바람, 우리는 늘 바람 속에서 살고 있다. 따스한 산들바람에 봄이 오고, 습하고 더운 남동풍이 여름을 몰고 온다. 남쪽에서 부는 선들선들한 건들마가 가을을 예고하고 차가운 북서풍이 불면 벌써 겨울이다.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이렇게 계절마다 다른 바람이 불어 피부로 직접 바람을 맞는 사람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그 바람에 순응하게 된다.봄바람엔 무언가 가슴이 설레고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면 왠지 쓸쓸한 고독감을 느낀다. 여름 태풍이나 겨울의 매서운 바람에도 나름 적응하고 단련이 되어 간다.사물에 대
6년 만에 다시 찾아갔다. 이사를 하면서 떠나온 부산 동구 초량을.작은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이사했다. 가보자가보자 말만 하고 아이가 대학생이 되도록 못 가보고 시간이 흘렀다. 김해에서 부산 초량까지 40분이면 갈 거리를 살다 보니 발걸음 하기가 어려웠다. 더군다나 아이가 그렇게도 먹고 싶다는 그 음식점의 쭈꾸미. 우리가 단골로 드나들 때도 손님이 별로 없어서 가게가 곧 문을 닫을 거라 생각을 했던 그 집. 낙후된 도시로 군데군데 재개발이 시작 되었다는 소식에 당연히 헐렸을 거라 생각을 했다. 주말만 되면 먹고 싶다는 그 집의
반에서 15등이라는 성적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나는 고등학교 시절 내내 성적순위가 60명 중 10등에서 15등 사이에서 왔다 갔다 했다. 그래서 그랬던지 고교시절 늘 스스로 그저 평범한 학생이라고 말해왔던 것 같다. '평범'이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를 떠나, 당시 학교에서는 성적 순위가 그 사람의 평가기준에 가장 큰 요소로 작용하지 않았나 한다.사실 평범하다는 것이 쉬운 것 같지만 평범한 삶을 산다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니리라. 그 대척점에 고난의 삶이 있으니 말이다.'반에서 15등', '
여자를 보는 아름다움의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이 기준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해 왔다.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 누군가가 이상형을 물어오면 망설임 없이 "키 크고 예쁜 여자"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되돌아오는 말은 "야! 꿈 깨"였다. 그때는 그야말로 꿈속에서 헤맸던 시절 같다. 결혼한 후에는 명랑한 여자가 아름답고, 이립을 지나 불혹이 되어선 마음씨 곱고 착한 여자가 아름답고, 지천명에는 어른을 공경하는 정숙한 여자가 아름다웠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키가 크고 작다든지 얼굴이 예쁘고 못생겼다든지 몸매가 뚱뚱하고 날씬하다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