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고뇌처럼 길고 질긴 여름이 지나간다. 여기저기서 가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내 몸과 마음에서도 중년의 나이가 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지난여름에 공식적인 워크숍 참석차 대구로 가는 기회가 있었다. 열차에 몸을 싣는 순간, 내 스무 살 적 비망록 속의 추억이 파노라마로 다가왔다.이십대는 가장 순수했던 청춘의 시절이다. '대구는 나뿐만 아니라 나의 아들과 딸도 20대 청춘을 보낸 곳이다. 우리 가족들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더욱더 그리운 곳이기도 하다. 진영역에서 출발한 열차는 7년 동안 완행열차의 푸른 시트에 청춘을 맡
앞산에는 산바람에 몸을 맡긴 나뭇잎들이 수런거린다. 태풍 타파가 지나간 하늘에 구름이 각종 형상을 만들며 그 수런거림에 동행한다. 오늘같이 맑고 투명한 하늘을 바라보면, 갖가지 다양한 구름 따라 내 마음의 붓도 함께, 무지갯빛 수채화가 그려진다. 가끔 동심에 젖는다. 구름 속을 눈여겨보면 청둥오리가 하늘 호수에다 물장구치며 먹이를 찾는 모습이 보인다. 동쪽 하늘에는 구름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백설공주 이야기 속의 마귀할멈도 보이고, 서쪽 하늘에는 마귀할멈이 백설공주를 질투해 독약이 든 사과를 먹여,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 구해
몇 해 전 70대 부부가 자식들의 귀성 고생을 들어주려고 상경길을 재촉하다가 전철역에 설치된 장애인용 리프트에서 변을 당했던 적이 있다. 1층 승강장을 향해 서서히 내려가던 리프트가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쇠줄이 끊어지면서 7m 아래 콘크리트 바닥으로 추락하여 할머니가 사망하고 할아버지는 양쪽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어이없게도 설치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은 새 시설에서.그래서 이런 안타까운 일이 되풀이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장애인들이 리프트를 승강기로 교체해 달라며 이동권 확보 시위를 벌이는 것이다. 우선 이동이 먼저
결코 끝나지 않을듯하던 한더위도 처서를 지나며 고개가 꺾였다. 여름햇살과 비에 무성하게 어우러져 있는 화초들 속에서 코끝을 스치는 기분 좋은 향이 보인다. 어딘가 싶어 고개 숙이니 뜻밖에도 난이 꽃대를 네 개나 피워 올렸다. 정갈하지 않은 베란다에 방치하듯 내어둔 화분인데도 장하기만 하다. '미진(微塵)도 가까이 하지 않고 우로(雨露) 받아 사느니라' 는 가람 이병기 선생님의 시조구절이 떠올라 오히려 난에게 미안하다.이십년 전쯤이다. 진영에서 버스를 타고 사군자를 배우러 오시던 일흔 초입의 어머니들이 있었다. 먹을 갈
노인은 한눈에 봐도 연로하고 병색이 짙었다. 굽은 등에 팔다리를 약간 벌려 걷는 모습이 커다란 거미 같았다. 파마기 없어진 짧은 머리카락은 끄트머리만 까맸고 뒤통수가 눌린 것으로 보아 자주 누워 있는가 싶었다.길에서 만나면 허리 굽히는 정도로 어른에 대한 예를 갖추었다. 땅을 보고 걷던 노인은 굽은 허리를 힘겹게 펴서 나를 올려보곤 했다. 희미해진 눈썹 문신이 그늘이 드리웠고 회백색 눈이 나를 응시하면 섬뜩했다.거미할머니가 기운이 나면 마실 나오는 날이다. 늦은 밤에도 다닐 때가 있다. 차가 다니는 어둑한 골목에서 비척거리다 몸이
김해시에서 주관하는 여성주간 행사에 갔었다.올해부터 명칭을 양성평등주간이라고 바꿨다한다. 하지만 여느 해처럼 설치해놓은 여러 부스에 남성들의 단체는 없었다. 여성단체들이 건강이나 가정폭력, 바리스타, 출산장려 등을 홍보하는 리플릿과 선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또 한편에서는 특기로 배울 수 있는 것을 체험하는 부스를 운영하였다. 비즈공예, 캘리그라피, 석고방향제 등이었다. 두루 다니면서 안면 있는 분들과 반갑게 인사도 나누고, 부채나 물티슈를 받기도 하고 무료로 제공되는 시원한 음료도 마셨다.체험부스는 인기가 높아 미리 신청을 하고 기
한 해가 끝나간다. 아쉬움에 떨고 있는 마지막 달력마저 스산하다. 그 또한 며칠이 지나면 새 달력으로 바뀌게 된다. 되돌아보니 낡은 달력이 붙어있던 추억이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낯익은 눈빛과 웃음이 깔린 모퉁이마다 반가운 소식과 슬픈 소식이 머물고 있다. 세월이 그리움이 되어 여울로 흐르고 있다.나뭇가지에는 몇 알의 홍시가 매달려 있다. 인심 좋은 주인의 배려가 까치밥으로 남아 간밤에 얼었다가 햇살이 퍼지면 녹기를 반복한다. 12월의 언저리가 거리에 나부낀다. 아직 늦가을의 기억이 멀어지지도 않았는데 들녘은 허허로움으로 가
뜨거운 여름 한낮, 후텁지근한 공기를 가르며 쏟아져 나오는 매미의 울음이 청아하다.우는 것일까, 노래하는 것일까, 수많은 개체가 어울려 한꺼번에 내는 저 소리는 분명 우렁찬 합창 소리가 틀림없다. 오래된 팽나무 군락지 옆에 있는 우리 집은 여름 한 철 매미의 노래로 귀가 호강을 하다못해 몸살이 날 지경이다. 텃밭의 채소들도 화단의 꽃들도 노래를 듣고 자라고 꽃피운다. 만물이 지쳐 늘어진 계절에 매미는 저 혼자 활기차고 즐겁다.17년 동안 땅속에서 살다가 번데기의 형태로 지상으로 올라온 후, 비로소 껍질을 벗고 성충이 된다는 매미,
비 오는 날 먹는 구수한 수제비는 별미 중 별미다. 잘 우려 낸 육수에 제철감자와 애호박을 넣어 끓여내면 진수성찬 이 부럽지 않을 맛을 낸다.내가 여덟 살 쯤 되었을 무렵 여름이었다. 저녁을 먹고 나면 호롱불 아래 아이들은 앉아 일기를 쓰고 엄마는 다음날 아침 반찬거리를 준비하곤 했었다. 엄마가 감자를 닳은 숟가락으로 긁는걸 보니 내일아침 반찬이 감자볶음 인가보다 생각하며 까무룩 잠이 들었다. 닭장에서아침을 알리는 닭 울음소리에 잠에서 깨여 밥상 앞에 앉았는데 뽀얀 이밥대신 수제비가 밥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낯설은 느낌에
창호지 격자문으로 인테리어를 한 고급 한식당에서 창호지문의 아름다움을 본다. 창호지가 주는 아우라에 식당의 품격을 한 등급 올려본다. 음식 또한 과격하지 않고 정갈할 것 같다. 한식당의 격과 잘 어우러진다. 우리 것의 아름다움이 자꾸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다.지금은 유리나 나무로 된 문을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내 고등학교 시절만 해도 집집마다 대부분 창호지로 방문을 발랐다. 창호지문에서 새어나오는 정감어린 불빛의 은근한 멋이 그립다.소녀시절, 창호지문에서 받았던 작은 홀림이 지금도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밤이 되어 하나
간 밤, 내린 여름비에 신록의 나뭇잎들이 떨어진 아침 길은 유난히 쓸쓸한 노래를 부르는 듯하다. 총총 바쁘게 걸음을 옮기지만 오늘따라 문득 주변의 사물들에 눈이 간다. 내게 말을 걸어주는 듯 부는 바람 한 끝에 떨어지는 나뭇잎을 조심스레 손으로 받아보며 '떨어지다'를 중얼거려본다.떨어지다는 결코 좋은 느낌, 좋은 어감은 아니다. 시험에 떨어지면 결과에 대한 아쉬움에 후회가 몰려든다. 면접에 떨어지면 나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경연에 떨어지면 쉽게 수긍하지 못하고 '왜?'라는 의문을 던지게 된다. 인생을
"저 어린것이 조막만 한 손으로 돈 벌러 다닌다네."아버지는 마실 온 동네 사람들을 앞에 두고 안쓰러운 얼굴로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그때 내 나이가 서른아홉이었다. 잠깐 다니러 간 고향 집에서 그 말을 들은 나는 무척이나 부끄러웠다. 물론 내가 덩치도, 키도 작지만 그렇다고 '저 어린것' 이란 소릴 듣기엔 어림없는 나이었다. 아버지에게 막내딸은 나이가 많건 적건 그저 저 어린것으로 보였을 것이다.얼마 전, 포털 게시판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내가 살다 살다 예비군을 태워다 줄지는 몰랐다는 내용의 글이다. 그 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