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2011~2014년 100회에 걸쳐 '김해의 뿌리-자연마을을 찾아서' 기획연재를 게재했다. 첫 연재 이전에도 그랬지만 이후에도 흙과 나무, 사람 사는 이야기가 있었던 자연마을에는 여전히 시멘트가 부어지고 생명은 뿌리째 뽑혀나가고 있다. 우리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잊혀지기 전에 김해의 원형질과도 같은 자연마을 시리즈를
"인구 50만 명을 넘어선 김해의 발전 속도는 눈이 부시다. 역동적인 김해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 뿌리는 도시화 이전에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자연마을'에 닿아 있다. 수백 수십 년에 걸쳐 시간의 퇴적물로 생겨난 자연마을들은 김해의 원형질과 같다."가 지난 2011년 11월 23일 '김해의 뿌리-자
3년 가까운 시간 기자 6명 바통 취재기록과 단순 향수 자극 뛰어넘어선 성과행정 차원 후속 작업 서둘러야 할 때2011년 11월 진례의 상촌마을에서 시작했던 의 기획연재가 2014년 9월 생림의 봉하마을을 끝으로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약 3년 동안 6명의 기자들이 바통을 주고받으며 100개나 되는 김해의 자연마을
출신 마을 취재 부탁 독자기고 여러번지역발전 데이터베이스 활용 목소리도"'자연마을' 시리즈는 김해사람으로서 잊고 있었던 김해의 뿌리를 되새겨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자연마을 시리즈는 그동안 독자들로부터 열렬한 성원을 받았다. 출향인들은 특히 관심을 많이 보였다. 취재과정에서는 마을 이장이 타지에 나가 살고 있는 마을 출신 어르신들을
봉수대 있던 '봉화산 아랫마을'에서 유래 6·25전쟁 이후 사람들 하나둘씩 정착화포천 늪지대 농지 개간해 벼농사 시작마을 앞 60만㎡ 들녘 친환경농법 농사정월대보름엔 달집 태우기로 주민 화합
2대 걸친 4명의 효자 기린 '2세4효비'임진왜란 4충신 류식의 조부 류용 장군사헌부 감찰·비변랑 지낸 조강 등 유명마을회관 자리는 30년 전까지 곡식창고외동의 빽빽한 아파트 숲을 지나 5분 간 지방도로를 달리다보면 주촌교차로가 나타난다. 주촌교차로에서 주동초등학교 방향으로 향하면 주촌면 원지리 국계마을이 나온다. 국계마을로 가는 길 양편에
양지 터전에 살기 좋아 옛 부자 동네효자 마을로 소문 자자하고 인물 많아박영식 전 교육부장관도 마을 출신어버이날은 명절보다 소중해 큰 잔치조선 말기 고종 때 김해의 한 마을에 부모에 대한 사랑이 극진한 형제가 있었다. 박시형, 박만형 형제였다. 그들은 어머니가 병환으로 위독하자 손가락을 끊은 뒤 피를 어머니가 마시게 해 소생시켰다. 이들은 어머니가 숨을 거
화포천 범람으로 여름이면 침수 피해고기 숨는 명당 이야기에서 이름 유래마실 물 귀해 공동우물은 매일 장사진100년 된 포구나무 당산제는 명맥 끊겨"메거지(메기의 김해 사투리)가 입으로 물을 내놓기만 해도 홍수가 났던 마을입니다."한림면 사람들은 안하리 어은(漁隱)마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인근 화포천의 범람으로 워낙 침수가 잦았던 마을이
옛 '초령원' 자리에 형성돼 이름 유래월촌나루 길목에 있어 옛 '하동'의 중심음력 정월대보름 당산제 풍습 유지270년 된 팽나무 시보호수로 지정돼대동면 초정리 초정마을은 백두산(白頭山)에 둘러싸여 있다. 원래 초정마을은 옛날 초령원(草嶺院)이었던 땅에 형성된 마을이다. 초령원의 '초'는 동쪽 또는 동쪽마을을 뜻하는 '새', '령'은 언덕이
칠산참외는 경남과 부산 지역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참외 브랜드다. 칠산참외를 키워내는 마을이 칠산참외정보화마을이다. 칠산참외정보화마을은 2004년 당시 행정안전부에서 조성했다. 정보화마을로 조성할 때는 도시·농촌 정보격차 해소가 목적이었으나, 현재는 특산물 소득창출이 목적으로 바뀌었다. 칠산정보화마을은 화목동 1·2통을 말한다. 화목
부산과 인접해 낙동강 경계를 따라 세로로 길게 형성돼 있는 마을. 바로 대동면 조눌리 조눌마을이다. 낙동강 연안 모래톱 위에 조성됐으며, 대동면에서 유일하게 산지가 없는 마을이다. 마을 서쪽으로는 비닐하우스들이 길게 펼쳐져 있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의 모습이다. 조눌마을에는 68가구에 18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주민 대부분은 70~80대 어르신들이다
상동면 대감리 봉암마을은 대감리에서 감노리 화현마을로 넘어가는 꽃고개 아래에 있다. 마을 양쪽은 산줄기가 감싸고 있고 대포천 건너편으로 신어산이 우러러 보여 풍수지리적으로 안정적인 형세를 띈다. 앞쪽에는 상동에서 흔치 않은 들판이 대포천을 따라 이어진다. 하지만 면적이 애매해 살림살이가 먹고 넘치는 정도는 아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 마을은 20여 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