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오광대-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37호하급관리로 일하던 아전들이 주역밑바닥 민심을 달래는 소통 공간으로민초들 애환 담고 있는 마당놀이일제강점기, 민족혼 담긴 행사 금지현장 누비는 작업 끝에 문화재 지정‘찾아가는 공연’ 등으로 저변 확대김해오광대는 김해 지역 대표적인 포구였던 가락면 죽림(현 부산 강서구 가락동)을 중심으로 전승되어온 탈춤 마당 놀이다. 정확한 발생 연도는 알 길이 없지만 19세기 중반 이후에 가장 성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분질서가 엄격했던 당시 특권을 누리던 양반들의 횡포와 이중성을 폭로하는 '마당놀이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 550호 지정반룡산 공원 지나 우거진 숲속 위치전우 선생 별세 직전에 현판 글씨 받아‘치치당’,‘염수재’ 등 재실 각각 이름 가져청통헌에서 술 한 잔 나누며 여름 나기제대로 된 안내판 없어 관리 아쉬움 2007년 8월 4일 영남 기호학파의 마지막 유학자로 불린 이우섭 선생의 장례가 열렸다. 월봉서원 앞에는 평상시 쉽사리 볼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한여름 도포와 갓을 쓴 선비 수백 명을 비롯한 3000명의 조문객이 모였다. 악귀를 쫓는 탈꾼이 운구 행렬의 선두에 서고 그 뒤를 200여 개의 만장과 흰 꽃상
월봉서원 연강재에 소중히 보관된 보물이보림 등이 엮은 '고문서'와 전우 초상화 등학문 향한 월헌의 뜨거운 열정 엿보여'신필' 채용신이 그린 간재의 상복 그림망국 실의에 빠진 유학자 모습 잘 표현올해로 세워진 지 100년이 된 월봉서원에는 집의 역사만큼이나 소중한 보물이 숨어 있다. 바로 월봉서원 고문서와 간재 전우(1841~1922) 초상화다. 경남도 문화재자료 제469호, 유형문화재 제540호로 각각 지정됐다.현재 연강재(蓮岡齋)에 보관돼 있는 고문서는 영남의 이름
1917년 세워져 근대한옥 특징 잘 드러나월헌 이보림 선생 거주하며 학문 익혀영남지역 기호학파 본거지로서 상징성일제 저항해 전통 의관, 머리카락 지켜먹고 살기 어려운 주민들도 극진히 대접인문학 강좌, 음악회 진행해 문턱 낮춰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음식점, 커피점 들이 생겨나는 율하카페거리 주변에는 아파트 단지가 줄지어 서 있다. 카페거리에서 1㎞도 떨어지지 않은 덕정사거리 인근에도 부영이그린타운 1·3단지, 부영6단지 등 아파트가 빼곡하다. 이곳에서 덕정마을 방향으로 100m만 들어가면 의외의 공간이 나타난다. 장유주민이라면 한두 번
둘레 900m 테뫼식 성벽, 가야 때 조성 추정‘고려 시대 왜구 침입 막으려 축조’ 첫 기록 등 조선시대 여러 서적에 등장허왕후 창건설화 서린 해은사 인근에 위치충의간 ‘만세불망비’ 정현석 등 공적 적어대형 바위에 새긴 ‘만장대’ 흥선대원군 친필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지일 정도로 산세가 두루 발달돼 있다. 자연스레 도성, 읍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성이 산에 축조됐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남한산성이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전국 곳곳에 2000여 개의 크고 작은 산성이 있다고 한다. 김해 어방동에 있는 분산성은 지역에
김해도호부사로 내려와 3년간 머물러선비, 백성 등 추앙 받으며 청렴한 생활수로왕에 관심 기울여 임금 사액 받아내향교 옆 취정재 장판각 보관가로 30, 세로 19㎝ 총 57장 목판 형태과거 찍어낸 책 없고 규장각 필사본만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고려 왕족들을 회유하고 왕조의 정통성을 세우며 사회 통합을 이루기 위해 고려의 태조 왕건을 비롯해 나라를 부흥시킨 왕 4명과 고려 충신 16명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을 세웠다. 이 사당에는 '숭의전(崇義殿)'이라는 이름이 붙었다.이후 조선은 단군과 고구
조선시대 1446년 두 능 함께 정비돼비에는 ‘수로왕비보주태후허씨릉’ 문구도 문화재 자료 227호 파사석탑 존재 눈길원래 호계사 있다 폐사 뒤 곳곳 흩어져1873년 부사 정현석 한곳에 모아 정비김해의 '할머니'인 허왕후의 무덤, 국가 사적 제74호인 수로왕비릉은 구산동 구지터널 바로 옆에 있다. 특이한 점은 왕과 왕비의
1854년 세워져 2006년 경남도문화재 지정700평 대지에 대문채, 사랑채 등 건물 5채두 사랑방 앞에는 ‘예강서원’ 편액 설치돼강우학맥 주도하며 후학 키운 안언호 기려도자료 279호 귀중한 자료명사들과 주고받은 편지, 분재기, 혼서 등무릎보다 낮은 굴뚝엔 ‘남 배려하는 마음’수백 년
선비 송빈·이대형·김득기·류식 선생왜적 쳐들어오자 자발적 김해성 합류신무기 무장한 상대와 사흘 동안 혈투물밀듯 쳐들어 온 적병에 차례로 피살세월 흘러 유림 뜻 모아 표충사 건립여러 차례 폐쇄 거듭하다 문화재 지정시내에서 멀어 찾는 발길 드물어 아쉬움지난 1일은 국가에서 지정한 '의병의 날'이었다. 나라가
선인 만나 바둑·가야금 즐겼다는 전설인근 칠점산 7개 봉은 공항 만들며 없애가야시대 작은 절 금산사 뒤 마애불평평한 바위에 선으로 그림 그린 듯고려시대 제작, ‘거등왕 초상’ 주장도사찰 뒤 계단 오르면 ‘부처님 왼발자국’‘돌섬’ 불리던 초선대 내부에 큰 바위 가득시 관리 소홀로 지
정현석 ‘금릉팔경’에 연자루 등 3곳 포함정몽주·맹사성 등 방문해 시구 읊기도세월 흘러 사라지고 지금은 연화사 위치사찰 입구부터 조선·가야시대 흔적 즐비함허정 있던 대웅전 앞 돌다리 ‘함허교’기둥 받치던 주춧돌 돌고돌아 원위치로친구 등이 김해를 찾아오면 꼭 소개시켜 주는 김해의 랜드마크는
전설로 내려오는 9암자 중 네 곳 남아장유화상 제자 수행 위해 세운 절 곳곳거북 머리·등껍질·목·꼬리·양발 모양1910년 완호 낙현스님 작품 칠성탱화도교 칠성신앙 상징 북두칠성·북극성 담아삼성각 보관 덕 대웅전 불 피해 모면밭 개간하다 우연히 찾은 삼층석탑노반·복발 하나로 조각돼 인
김해 출신 서강 김계금 뒤늦게 벼슬길단종 폐위되자 귀향한 뒤 청빈한 생활진영읍 와룡산 무덤가에 고사리 피어나선비·유림들 “생육신에 더해 육일거사”300년 뒤 언행, 업적 모아 목판 편찬경남도문화재 지정돼 미양서원에 보관"내 죽은 뒤에 반드시 기이한 일이 있으리라." 세조(수양대군)가 어린 조카 단종의 왕위
‘대통령의 길’ 따라 산 300m 지점 위치 가파른 산세 탓 굴러 떨어졌을 가능성 30년 전까지 전설 속 ‘자암산’으로 불려 허황옥, 태자 거등 위해 암자 창건 전설 통일신라 추정 기와 등 자암 흔적 곳곳에진영읍 봉하마을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곳으로, 매년 전국에서 70만 명 이상이 찾는 김해의 대
연지공원 인근에 옛날부터 ‘큰바우’ 존재2006년 지표조사 결과 “고인돌” 판정추가조사 길이 85m, 폭 19m 묘역 확인금속 등 1400여 상자 유물 연거푸 출토청동기~조선시대 석실묘·무덤 대거 발견상석 운반할 장비 없어 그대로 다시 복토김해대로 옆 지하에서 수천 년 비밀 간직지금은 고층 아파트들이
총 100건 이상 문화재 지정… 김해는 3건불교 경전 중 가장 많이 간행된 책전체 7권 28품 ‘부처 마지막 가르침’제25품 유명보물 제961-1호 등 두 권 대동 원명사 소장600년 전 추복 위해 성달생 형제 필사도 지정문화재 제528호 삼방동 화엄사에성관 스님 “영험한 경전 널리
임란 때 왜군포로 백성 회유하려 쓴 교서자신은 피난처 머물면서 “탈출해 돌아오라”충신 권탁 적진에 잠입해 100여 명 설득후손들 ‘선조어서각’ 세우고 문서 보관1975년 도난당했다 1년만에 되찾아지역 국회의원 노력 덕 1988년 보물 지정안동권씨 문중, 보안상 부산박물관 위탁조선시대에 임금이 내린 문서는 대부분 한
시리즈 '김해의 문화재'를 시작한다. 김해에는 70개가 넘는 문화재가 있다. 이들이 어떤 설화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이를 통해 김해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시민들의 자긍심을 높이자는 취지에서다. 입구 숭화문 들어갈 땐 동문 이용 원칙‘왕의 영혼길’ 홍살문은 좌우로만 다녀야 납릉 무덤 둘러싸고 갖가지 전설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