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만큼 재배면적 넓지 않아도 맛과 향 뛰어나 최고 품질로 인정동쪽 시루봉에서 마을이름 유래백두대간 끝 '백두산'은 자랑거리190여 가구 480여명 주민, 맑은 공기 후덕한 인심에 식구처럼 오순도순대동면 시례마을로 접어들자, 정말 부추 향이 맡아졌다. 부추 향이 난다는 기자의 말에 "우린 여기 살고 있으니까 잘 모르겠는데, 참말 향기가 나는교?
임진왜란 때 노래·풍악 울려퍼져 마을에 침입했던 왜병 놀라 도망양동리와 내삼리 경계 양동산성 가야시대 때 쌓은 것으로 추정백일홍 두 그루 당산나무로 모셔농업용수 대던 양동지도 호젓주촌면으로 통하는 입구를 지나 길을 따라 계속 들어가면, 공장과 그곳을 드나드는 커다란 트럭으로 번잡한 지역을 벗어난 비교적 한적한 마을이 나타난다. 이곳이 바로 주촌
대청계곡 수려하고 빼어난 경관창원 넘어가는 고개에 있는 가게에서마을 이름 '상점(上店)' 유래"'상점마을'보다 '장유폭포수'라는 지명이 더 유명합니다." 상점마을 유금준(63) 이장은 인근 도시민들이나 김해에서 오래 산 어르신들은 마을 이름보다 '장유폭포수'라고 해야 더 잘 알거라고 설명했다. 아닌 게 아니라 장유폭포가 있는
깎아지른 듯한 무척산 품에 안겨 200여 가구 500여 주민 오순도순선조들 글·무예 가르쳤던 훈도골 철 캐기 위해 굴 팠던 목탄골허왕후 극락왕생 위한 모은암 등 마을 역사 간직한 흔적 곳곳에옛 가락국 시대를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철이다. 가야시대때 최전방에 속했던 곳으로서, 생림면 생철리의 본마을인 생철(生鐵)마을은 쇠가 많
어느새 봄이 와 있는 것이 아닐까? 대동면 대감리 감내마을 들판은 곧 생명을 틔워올릴 듯 봄기운이 느껴졌다. 붉은 빛의 산딸기 밭에서 금방이라도 싱싱한 산딸기들이 얼굴을 내밀 것 같았다. 마을 초입 산딸기밭에 버티고 앉은 고인돌(지석묘)은 이 일대에서 사람이 살기 시작한 역사가 오래임을 증명하는 듯하다. "마을 주변에 고인돌이 많았대요. 그게 뭔지
용전폭포에서 쏟아져내려 도랑으로 흐르는 물 그대로 마셔당산나무 3그루 일일이 제사 지내 용전숲은 동화 속 그림 같은 풍광피서객들에 시달려 "보호합시다"산 아래에 펼쳐진 첫 마을. 지금은 김해지역 어딜 가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공장들이 감히 들어서지 못하는 개발제한구역 안에 있는 마을. 바로 진례면 산본리에 위치한 용전(龍田)마을이다. 마을
낙동강하구둑 생기기 전 갯벌지역 도로 생기면서 나루터도 사라져강 사이에 두고 도시와 농촌 대조, 마을 뒤편 각성산에 성 흔적 남아마을 상징 닭바위도 도로에 밀려 "산단 개발되면 정든 이들과 이별"남해고속도로에서 낙동강 상류쪽을 바라다 보면 두 가지의 대조적인 풍경을 만나게 된다. 주택 및 상업시설이 즐비한 부산 북구의 모습과 비닐하우스가
가야·신라시대 3천호 이상 거주, 조선시대 '도요저·도요진' 불려이름만으로도 중요한 곳 추측, 농사 대신 생선 거래하며 생계김해시의 가장 북쪽에서 밀양과 양산을 마주보고 있는 김해 생림면 도요리. 도요마을로 가는 도로 왼편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있다. 낙동강변에는 오랜 옛날부터 많은 어촌마을이 있었다. 도요마을 역시 긴 역사를
명당 기 눌러야 사람이 살 수 있는 풍수, 사찰 지은 뒤 마을 생겨났다고 전해져도문화재자료 제330호 보존 선지사, 부처의 마음으로 마을 풍광 품은 듯맑은 물 흐르던 동네에 공장들 들어서 옛 모습 사라져 주민들 "안타깝죠"주촌면의 1번지라고 불리는 동선(東仙)마을. 동선마을은 선지고개 또는 외동고개라고 부르는 경운산 고갯길 밑에 있는 주촌
마을 중심에 내 내려다보여 망천봄에 유명한 650년 수령 이팝나무흥덕사엔 문화재 망월석탑온마을 먹여 살리던 우물 …'망천마을'이 어디인지 묻는 사람에게 '신천리 이팝나무가 있는 마을'이라고 대답하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수령 650여 년의 이팝나무(천연기념물 제185호)가 피워내는 꽃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바로 그 마을이다. 마을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집도 지붕도 사람들도 생기고 나고 자란 그 모습 그대로다김해시 상동면 여차마을을 찾아가는 길은 운치가 있다. 줄지어 서 있는 벚꽃나무 가로수들, 생림면과 경계가 되는 무척산, 그리고 산맥들을 구경하며 가다 보면 어느덧 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마을에 가기까지 몇 번의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지나가야 하는데 이 길이 바로 '여덟막고개
조선 후기 설창장 서며 크게 번성장 열리던 마을 안길에선 정월대보름 주민 줄다리기 장관14번 국도를 따라 김해시 진영읍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처음 만나는 설창(雪倉)마을. 겨울이면 눈이 많이 내리고, 1666년(현종 7년)에 세곡수납창고를 세운 곳이라 설창이라 불렸다. 면·리제 실시 이후 진영읍에 처음 생긴 중북면의 면소가 있었으며, 조선 후기에
김해시 진례면의 중심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옛날 '벽송정'이라 불리던 마을이 있다. 소나무가 많은 산이 휘감고 있어 송정마을이라 불리는 이곳은 멋스러운 옛 마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송정마을이 처음 생긴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450여년 전. 650여년 전쯤 송정마을 위 산 골짜기 쪽에 위치해 있던 대동(大洞)이라는 마을에서 살던 사람들
250여년전 전주이씨 가문 터잡아6대째 이어온 월봉서원 중심25가구 70여명 주민 고향 지켜아파트단지에 둘러싸였어도세월 비켜간 듯 고즈넉한 옛 풍광장유면 관동리 덕정마을은 큰 정자나무가 있다고 해서 덕정(德停)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250여 년 전, 전주이씨 가문이 이곳에 터를 잡고 일가들이 모여 살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 참판을 지내다 낙남(落南:서울에
김해 상동면 묵방리에 위치한 장척(長尺)마을. 이름 그대로 골짜기가 길고도 깊은 마을이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이곳에 마을이 이루어진 것은 대략 400년 전. 바닷물이 밀려와 농사를 망치기 일쑤였던 평야를 떠나 산세 좋은 깊은 골짜기에 마을을 형성한 것은 먹고 살기 위한 선택이었다. 마을을 이룬 주민들은 밭과 논을 일구어 곡식을 수확하고 주변의 자연들을
김해시 주촌면 천곡리 천곡(泉谷)마을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샘이 유명한 마을이다. 천곡은 우리말로 '새미실'이라고 부르는데 샘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됐음을 알려준다. 마을의 유래가 된 샘은 마을 입구의 '앞새미'와 학봉산 끝자락의 '뒷새미'로 크게 두 곳이다. 하지만 공장들이 들어서 지하수를 파는 바람에 현재 앞새미는 작은 물 웅덩이처럼 흔적
인구 50만 명을 넘어선 김해의 발전 속도는 눈이 부시다. 농사를 짓던 논과 땅에 도로를 내고 건물을 지으며 도시를 확장해 가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역동적인 김해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 뿌리는 도시화 이전에 자연 발생적으로 생긴 '자연마을'에 닿아 있다. 수백 수십 년에 걸쳐 시간의 퇴적물로 생겨난 자연마을들은 김해의